코로나 여파로 후원금 ‘뚝’… 그래도 이웃사랑은 식지 않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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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나누는 푸드뱅크]〈상〉
한국선 1998년 외환위기 때 결성, 지난해부터 운영난… 일부 중단도
공공시설 휴관에 수요는 더 늘어… 기업과 특별 프로젝트로 ‘돌파구’
농심-CJ제일제당, ‘푸드팩’ 제공… 한국타이어는 타이어 무료 교체

충북 제천시의 푸드뱅크 관계자와 의용소방대원들이 식품 꾸러미인 ‘이머전시 푸드팩’을 수재민에게 전하기 위해 차량에 싣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전북의 한 저소득 가정에 이머전시 푸드팩을 전달하는 모습. 푸드뱅크와 농심은 올해 1만 명에게 이머전시 푸드팩을 지원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제공
충북 제천시의 푸드뱅크 관계자와 의용소방대원들이 식품 꾸러미인 ‘이머전시 푸드팩’을 수재민에게 전하기 위해 차량에 싣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전북의 한 저소득 가정에 이머전시 푸드팩을 전달하는 모습. 푸드뱅크와 농심은 올해 1만 명에게 이머전시 푸드팩을 지원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제공
누군가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그저 ‘어디서나 마스크를 써야 하는 불편’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전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이모 씨(31)에게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이 씨는 하나뿐인 직장을 잃었다. 지역아동센터마저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탓에, 이 씨는 새 일자리를 찾으러 다니려 해도 집에서 혼자 끼니를 챙겨야 하는 아이가 마음에 걸렸다.

이 씨의 걱정을 덜어준 곳은 푸드뱅크였다. 인근 푸드마켓에서 쓸 수 있는 바우처와 함께 올 6월엔 각종 간편식으로 구성된 ‘이머전시(긴급) 푸드팩’을 배달해 줬다. 이 씨는 “집을 비웠을 때 아이가 혼자서도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 간편식을 받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코로나19로 끊긴 도움의 손길

푸드뱅크는 식품과 생활용품을 기부받아 결식아동과 홀몸노인 등 저소득 소외계층에 지원하는 민간 나눔 제도다.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된 뒤 우리나라에선 외환위기로 인해 결식 문제가 심각해지자 1998년에 처음 생겼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운영하고 있다.

국내 푸드뱅크는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전 세계 네트워크 44개국 가운데 가장 빠르고 꾸준히 기부품이 늘었다. 기부물품관리시스템(FMS)에 따르면 올 2월 기준 국내 푸드뱅크는 316곳, 마트 형식의 푸드마켓은 130곳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행되던 때도 모집액이 줄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1월 국내에 상륙한 코로나19는 푸드뱅크에도 타격을 입혔다. 푸드뱅크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지역 제과점 등 소상공인들이 줄줄이 폐업하고, 대형 식품기업들도 생산을 줄였기 때문이다. 2019년 2365억 원이었던 모집액은 지난해 2118억 원으로 줄었다. 올해도 1∼8월 기준 1367억 원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일부 푸드뱅크는 코로나19 여파로 아예 운영을 일시 중단했다.

반면 코로나19 탓에 휴관하는 지역아동센터나 복지회관이 늘어나면서 끼니를 챙기기 어려운 취약계층의 식품 및 생활용품 수요는 더욱 커졌다. 특히 올 들어 신선식품 물가가 크게 오른 탓에 채소나 과일을 보기 어려워졌다. 푸드뱅크 관계자는 “기부를 받으려는 신청 문의가 급증했는데 물품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식품·생활용품 기업 후원 절실”

이런 보릿고개를 넘기는 데 도움이 된 것은 기업과의 특별 프로젝트였다. 농심은 푸드뱅크와 함께 식사 대용품, 반찬, 생수 등 생존에 필수적인 물품들로 구성한 ‘이머전시 푸드팩’을 지난해 8000명, 올해 1만 명에게 지원했다. 지난달 제12호 태풍 오마이스로 큰 피해를 입은 경북 포항시와 지난해 8월 집중 호우를 겪은 충북 제천시 등 재해 지역의 수재민들이 우선적으로 혜택을 받았다.

기존에는 식생활 관련 지원을 받지 않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급격히 형편이 나빠진 취약계층에도 신청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 이머전시 푸드팩을 지원했다. 모텔에서 생활하며 암 투병을 하는 박모 씨(56)는 이머전시 푸드팩을 받고 “병원비 때문에 경제적 여유가 없고 항상 끼니가 부실했는데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며 감격했다.

CJ제일제당은 푸드뱅크를 통해 결식 우려 아동에게 지원하는 ‘호프 푸드팩’을 2019년 1500개에서 올해 2000개로 늘렸다. 코로나19로 단체 급식이 어려워진 빈틈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평소 푸드뱅크에서 충분히 모이지 않는 쿠키와 땅콩버터 등 간식류가 포함돼 있어 성장기 아동이 있는 수혜 가정의 호응이 좋았다. 호프 푸드팩을 지원받은 부산의 한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아이들이 불량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잦아 장염을 달고 살았는데, 후원 덕분에 많이 나아졌다”고 전했다. 한국타이어나눔재단은 올 7월부터 푸드뱅크가 운행하고 있는 냉동·냉장차의 타이어 400여 개를 무료로 교체해주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강훈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푸드뱅크사업단장은 “코로나19 이후 실직이나 사고로 급격히 형편이 나빠진 분들이 늘면서 푸드뱅크 이용 수요가 증가했지만 모집액은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식품과 생활용품 기업의 도움 없이는 위기를 이겨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푸드뱅크의 식품·생활용품 나눔에 참여하려면 5000kg 이상 대량 기부는 02-713-1377로, 소량 기부는 1688-1377로 문의하면 된다. 기부한 물품의 장부가액만큼 기부 영수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코로나 여파#후원금#이웃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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