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세입자들도 “평생 집 사기 글렀다”… 팬데믹 중 집값 폭등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8일 14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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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집이 없는 사람 중의 절반 가까이는 내 집 마련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처럼 미국도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면서 무주택자들의 상실감이 상당히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7일 미 경제매체 CNBC방송 보도에 따르면 온라인 대출업체 렌딩트리는 지난달 2~6일 소비자 2050명을 대상으로 주택 구입을 주제로 설문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 중 세입자의 48%는 “자신이 평생 집을 사지 못 할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현재 41~55세인 ‘X세대’의 경우는 55%, 25~40세에 해당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52%가 내 집 마련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세대들보다 집을 못 살 것이라는 공포가 큰 것이다.

렌딩트리의 제이컵 채널 수석 애널리스트는 “소득이 절정에 다다른 X세대를 비롯해 한창 커리어 중반에 접어든 사람들은 ‘지금 집을 사지 못 하면, 아마도 앞으로 계속 못 살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면서 “이들은 팬데믹 기간 중에 집값이 정말 빠르게 오르고 임금은 이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을 목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평균적인 가정의 경우 주택 보유가 부의 큰 원천이라는 점에서 (X세대 등의) 이런 생각은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중산층은 금융자산이 많은 부유층보다 상대적으로 주택 자산에 더 의존하는 양상을 띤다. 주택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중산층 가정이 내 집 마련에 실패할 경우 계층 하락의 위험도 커지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미국인들도 한국인들처럼 주택 소유를 상당히 선호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응답자 중 88%는 월세를 내는 것보다 자기 집을 갖기를 더 원했다. 자유롭게 공간 활용을 할 수 있다는 점(63%)이 가장 많이 꼽혔지만, 월세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점(55%), 집값이 대체로 상승한다는 점(47%)도 장점으로 거론됐다. 집을 장만하기 어려운 이유로는 선납금이 너무 비싼 점, 집값이 너무 높은 점, 신용점수가 낮은 점 등이 꼽혔다. 미국에서는 집을 살 때 보통 집값의 5~20%를 선납금(down payment)으로 내고 나머지는 주택 모기지를 받아 해결한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총 34조 달러 상당의 부동산을 갖고 있으며 주택담보대출액은 11조 달러에 이른다.

최근 미국에서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것은 무엇보다도 집값이 너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발표된 미국의 6월 전국 주택가격 지수(케이스 실러 코어로직)는 1년 전보다 18.6% 상승하며 1987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현재 집값은 미국의 부동산 대호황기였던 2006년에 비해서도 40% 이상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미국의 집값 급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주택 구입 수요가 많아진 데다, 제로금리 정책과 막대한 재정지출로 시장에 유동성이 많이 풀리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달 초에 앞으로 3년 간 주택 공급을 10만 가구 늘린다는 계획을 서둘러 발표하기도 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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