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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특수성이 갖는 보편성, 그리고 허경영[이승재의 무비홀릭]

입력 2021-09-03 03:00업데이트 2021-09-0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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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사랑이 특별하다고 믿는다. 쟤도 쟤의 사랑이 특별하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사랑은 특별하지 않은 게 아닐까?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가 던지는 질문. 리틀빅픽처스 제공
[1] 7월 개봉한 일본 청춘로맨스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가벼운 얘길 하는 척하지만 제법 묵직한 생각거리를 남겨요. 시작은 발랄해요. 스물한 살 동갑내기 대학생인 남자 ‘무기’와 여자 ‘키누’는 집으로 가는 막차를 놓친 서로를 발견해요. 일면식도 없는 둘은 한두 마디를 나누다 깜짝 놀라요. 신은 신발, 좋아하는 책, 술, 영화, 음악 모든 게 쌍둥이처럼 똑같았거든요. 심지어 영화 티켓을 책갈피로 쓰는 버릇과 햄버거의 양배추와 패티를 따로 떼어 먹는 식습관까지 같았어요.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 티켓을 사놓고도 가지 못한 사실까지,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보자기가 바위를 이긴다는 설정 자체가 말이 안 된다(바위가 보자기를 뚫어버리므로)’는 지론까지 서로 똑같단 사실을 확인한 둘은 “운명적 사랑”이라며 동거에 들어가요.

힘들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둘의 러브라이프가 시작되어요. 여자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버는 한편,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남자는 저렴한 가격에 그림을 그리며 생계비를 보태요. 극장에 갈 돈을 아껴 집에서 컴퓨터로 내려받은 영화를 알콩달콩 함께 보아요. 학교 수업도 거르고 취업설명회도 뒷전인 채 사흘 내내 사랑을 나누기도 하지요. 아아, 꿈만 같은 생활! 일이 끝나면 전철역에서 만나(싼값에 구한 집이라 전철역에서 멀리 떨어진) 집까지 함께 걸어가는 30분이 그렇게 로맨틱할 수가 없지요.

하지만 둘은 4년 만에 현실의 벽에 부닥쳐요. 가장(家長) 역할을 하기 위해 꿈을 접고 유통회사에 취직한 남자는 계속되는 업무와 실적이 주는 무게감에 짓눌리며 낭만을 상실하기 시작해요. 둘이 좋아하던 게임, 둘이 좋아하던 만화, 둘이 좋아하던 영화가 어느 순간 너무 아이 같고 유치하게만 느껴져요. “언제까지 대학생 같은 기분으로 살 순 없다”는 남자와 “꿈을 잃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는 여자는 갈등하고, 결국 둘은 새삼 깨달아요. 운명이라 생각했던 두 사람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고방식과 취향의 차이가 있었는지를 말이에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자연스럽게 이별해요. 그리고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요.

[2] 이 영화엔 탁월한 상징이 나와요. 무기와 키누가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낀 채 음악을 함께 듣는 습관화된 모습이지요. 둘은 같은 음악을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달라요. 스테레오 사운드로 재생되는 음원을 듣는 둘은 왼쪽과 오른쪽 이어폰을 통해 ‘같은 듯 완전히 다른’ 음악을 듣고 있었으니까요. 같은 꿈을 꾼다는 믿음에 사랑은 시작되지만, 둘은 각자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란 얘기지요.

사랑은 꽃다발 같아요. 싱싱하게 시작하지만, 시들어요. 이 영화 속 명대사처럼 “연애는 살아있는 거라 오래 못 가”요. “시간이 좀 지나면 서로 공을 돌리면서 경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축구 경기와 같은 것이 연애라고요. 대부분의 사랑은 서로의 교집합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지만, 결국엔 서로의 여집합을 확인하며 막을 내려요. 그래서 세상 하나밖에 없는 연애는 아주 보통의 연애로 끝나요. 특수한 것이 어쩌면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고요.

[3] 사흘 전,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안상수 전 인천시장이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와 손을 잡고 “허 대표의 정책이 매우 현실적”이라고 말했어요. ‘관종 정치’란 비난도 받지만, 허경영이 시쳇말로 ‘듣보잡+돌아이’에 지나지 않는다면 10년 넘도록 세간의 관심을 받았겠어요?

알고 보면, 허경영의 주요 주장들은 언유주얼(unusual·특이한)한 동시에 유주얼(usual·보편적)해요. 대권 도전 시절 ‘전남과 경남을 합친 전경도’를 만들겠다는 그의 지역 갈등 해소 방안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설득력 있느냔 말이에요. 경기도를 서울로 통합한다는 아이디어는 부동산값 폭등으로 서울에서 밀려나는 ‘부동산 난민’이 늘어나는 요즘 상황에선 무릎을 칠 만하잖아요? 결혼부 신설, 결혼수당 1억 원, 미혼자 연애수당 20만 원(이혼해도 수령 가능), 출산수당 5000만 원, 자녀가 열 살 될 때까지 전업주부수당 월 100만 원 같은 공약도 허무맹랑하다고 치부하긴 점점 어려워져 가지요. 이 어마어마한 재원을 도대체 어디서 마련하느냐고요?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놈이 많은 것”이라는 허경영의 폐부를 찌르는 대답은 그의 주장이 오트 쿠튀르(맞춤복)의 외피를 두른 프레타 포르테(기성복)가 아닐까 하는 미친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아, 멋져! 특수자인 동시에 보편자라니요! 그런 이상적인 철인(哲人) 정치를 실현할 진짜 리더를 우린 손꼽아 기다린다고요. 허경영 빼고.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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