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각의 조각가’ 김종영의 동양적 뿌리 찾아서…

김태언 기자 입력 2021-05-20 03:00수정 2021-05-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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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김종영미술관 특별전
기존 서구적 관점서 벗어나 재해석… 대표작이자 한국 첫 추상조각 ‘새’
천지인 사상과 음양조화론 담아… 여인 드로잉에도 동양 사상 표현
‘작품 80-6’은 노자 도덕경 모티브
한국 최초의 추상 조각 작품 ‘새’(1953년).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머리(天)로 비스듬히 올려다보고 가슴 부분(人)과 다리(地)로 우뚝 서 있다. 만물을 구성하는 천지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깎지 않는 조각가. 수식어만으로도 우성 김종영(又誠 金鍾瑛·1915∼1982)은 유달랐다. 구태여 깎지 말라는 ‘불각(不刻)의 미’는 김종영이 한평생 읊었을 철학이다. 그의 고유함은 한동안 많은 평론가들의 이목을 끌어왔지만 한편으로는 그 뿌리가 무엇인지 쉽게 간파되지 않는다는 말이 따라다녔다.

묵은 질문의 실마리가 될 전시가 찾아왔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김종영미술관은 개관 20주년을 맞아 7일부터 특별전 ‘김종영의 통찰과 초월, 그 여정’을 열고 그의 작품을 서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다른 시선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김종영의 작품세계를 연구해온 원로 평론가 옥영식 선생과의 공동 연구 결과다.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김종영 선생은 동서양을 관통하는 추상이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 고유의 우주관을 표현해낼 수 있을지 고민했던 것 같다”며 “양과 음, 하늘과 땅과 사람 등 생성의 원리를 다룬 동양 사상이 작품 곳곳에서 나타난다”고 말했다.

김종영의 명성을 드높인 작품 ‘새’에서부터 그의 고뇌는 드러난다. 이 작품은 1953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된 작품으로 한국 최초의 추상 조각이다. 당시 김종영은 동양 철학자 우암 김경탁(1906∼1970)의 논고 ‘실생 철학의 구성’(1953년)을 읽고 평생 소장했는데, 그 내용은 음양조화론과 맞닿아 있었다. 음양조화론과 함께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는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가 통용됐다는 점을 접목해 보면 새의 머리 부분은 하늘, 수직으로 선 새의 가슴과 다리는 각각 사람과 땅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작품 80-6’(1980년)은 자연 상태인 통나무(一)를 반으로 쪼개 포갠 것(二)으로 보아 생성의 원리를 시각화한 작품으로 해석된다. 그의 작품 중 구태여 깎지 말라는 ‘불각의 미’의 극치로 꼽힌다.
이는 기존의 시각과는 상이하다.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은 작품 제목이 비슷하다는 이유 등으로 서양 현대조각의 아버지인 브른쿠시의 ‘공간의 새’와 연관된 작품이라고 해석했다. 그가 활동하던 1950년대는 우리나라에 서구 미술이 유입됐고 김종영 또한 이를 능동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김종영 관련 논문 중 상당수가 그의 작품과 서구 작품 간의 형태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어떤 영향 관계가 있었는지 살피는 것에 집중돼 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우주관을 염두에 두면 날아가려는 순간의 모습을 포착한 브른쿠시의 새는 김종영의 새와는 전혀 달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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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D-0108’(1961년)의 위아래에는 상형문자로 산과 물이 적혀 있다. 주역의 64괘가 상괘와 하괘의 조합으로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과 비슷한 방식을 취했다. 김종영미술관 제공
조각뿐 아니라 회화에서도 그의 작품관을 엿볼 수 있다. 1961년에 그린 드로잉 작품은 화면을 위아래로 나눠 마주 본 채 누워 있는 여인을 담았다. 수많은 드로잉 작품 중 하나로 여겨졌던 이 그림에서 새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그림 위와 아래에 모두 영문으로 이름을 쓰고 그 옆에는 각각 상형문자로 ‘山’과 ‘水’를 썼다는 사실이다. 바탕색은 각각 양과 음의 색인 갈색과 파란색이다. 미술관은 주역(周易)에서 아래가 물이고 위가 산인 산수몽괘(山水蒙卦)가 있는 점을 볼 때 이 작품 또한 동양 사상을 품고 있다고 분석한다.

불각도인(不刻道人)이라는 그의 정체성은 여러 실험의 결정체다. 그는 자신의 에세이 ‘초월과 창조를 향하여’에서 “표현은 단순하게, 내용은 풍부하게”라고 방향성을 설명했다. 그의 절제적 표현은 작가의 이념 등을 표현하지 않고 재료 자체에 관심을 두는 서구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멀다고 해석할 수 있다.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 어긋나게 포개 놓아 단순미의 극치라고 평가받는 ‘작품 80-6’도 노자 도덕경 등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시선을 달리하면 해석이 달라진다. 이번 전시는 김종영의 작품을 김종영의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작품을 새로 톺아볼 시발점이 될 것이다. 다음 달 27일까지. 무료.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김종영#동양적 뿌리#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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