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년 역사 ‘애관극장’ 살리기 나선 인천시민들

박희제 기자 입력 2021-05-04 03:00수정 2021-05-0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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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경영난으로 매각설 돌자
보존대책-활용방법 마련 고심
극장 지키기 100만 서명 운동
인천시는 공공인수 방안 논의
국내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인천 중구 경동 애관극장이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재건축 위기에 놓였다. 애관극장 보존을 위한 시민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인천시가 공공 매입을 추진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1960년대 애관극장 모습.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인천시 제공
‘1895년 협률사(協律舍)-1910년 축항사(築港舍)-1925년 애관(愛館).’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이라는 전통을 120년 넘게 지켜온 인천 중구 경동 애관극장이 이렇게 이름을 바꿔 왔다. 6·25전쟁으로 옛 건물이 소실되자 1960년 본관(1관)을 다시 지은 뒤 2004년 1관 옆에 2∼5관 건물을 신축하면서 멀티플렉스영화관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수년간 적자 누적에 따른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애관극장이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역사적, 장소적 보존가치가 높은 극장을 헐고 자칫 상업용도에 맞는 대형건물로 재건축될 공산이 커지자 ‘애관극장을 사랑하는 인천시민모임(애사모)’을 중심으로 ‘극장 지키기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 개항장문화지구에서 사라지는 옛 흔적들

애관극장 주변은 1980년대까지 키네마극장 현대극장 자유극장 동방극장 인영극장 미림극장 등 20개가량의 극장이 밀집한 인천 시네마거리였다. 근대건축물이 즐비한 국내 네 번째 문화관광특구인 개항장문화지구∼싸리재역사문화거리∼배다리 헌책방골목을 잇는 중간지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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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지역에선 인천아트플랫폼, 관동갤러리, 빙고, 서담재, 버텀라인 등 구한말∼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창고, 적산가옥을 재생한 문화공간이 꾸준히 들어서고 있지만 근대건축물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중구청이 1912년 지어진 애경 비누공장(애경그룹의 시초)을 철거하고 주차장을 지어 거센 비난을 받았다. 지난해 일제강점기 여성 근로자들의 애환이 서린 ‘오쿠다정미소’가 헐렸고 송주옥(1930년), 조일양조장(1939년) 등도 이미 없어졌다.

근대건축물 소유자가 문화재 등록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보존이 어려워 역사적 가치가 높더라도 이처럼 건물 철거가 손쉽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인천시가 관리하고 있는 건축자산 492건 중에서도 철거 등으로 사라진 건물이 3일 현재 5건에 이른다.

애관극장 전신인 협률사는 이름은 같지만 한자가 다른 서울 최초의 실내극장인 협률사(協律社·1902년)보다 7년 빨리 개관했다. 초기엔 남사당패, 성주풀이 같은 전통악극을 공연하다 신파극에 이어 서양 영화를 선보였다.

옛 극장들은 멀티플렉스영화관 열풍 속에 거의 다 문을 닫았지만 애관극장을 50년 넘게 소유하고 있는 창업주의 자손에 의해 어렵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 극장주가 병원에서 거둔 수익으로 적자를 메우고 있으나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 극장 건물을 팔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 공공문화공간으로의 전환 논의 개시

애사모 회원 8명은 지난달 30일 오후 6시 애관극장에서 영화배우 공유의 주연으로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 이야기를 펼치는 영화 ‘서복’을 관람했다. 회원뿐만 아니라 가족, 지인들과 함께 애관극장에서의 영화 보기를 독려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또 ‘애관극장 지키기 100만 명 서명운동’에 나섰고 애관극장 일대의 카페, 상점과 연계해 애관극장 관람객에게 이용 금액의 일정액을 할인해 주는 홍보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불과 며칠 만에 7명의 상인이 ‘할인매장’에 동참하기로 했다. 애사모 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이희환 인천연구원 학술연구교수(55)는 “시민들의 문화적 자부심이 담긴 애관극장에 대한 공공 매입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 이후 민관 협의를 통한 원도심 문화 재생의 모범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인천시도 애관극장 보존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29일 시청에서 시 문화담당 관계자와 인천시의원, 애사모 대표가 애관극장 보전대책을 위한 첫 회의를 열었다. 시는 공공예산을 통해 극장을 매입하기 위한 감정평가 작업을 이달 말까지 마치기로 했다. 예산 한도 내 적정가로 극장을 사들인 뒤 시민과 함께 국내 첫 근대식 극장에 대한 보존 및 활용 방안을 찾기로 했다. 박찬훈 인천시 문화관광국장은 “법적 근거에 따라 극장 매입을 위한 예산을 짤 예정이지만 소유주가 원하는 가격과의 간격이 클 경우 고민이 크다”며 “메세나 형태의 기업 협찬 등 민관 협업을 통해 국내 영화의 뿌리라는 역사적인 가치를 살리려 한다”고 말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애관극장#인천시민#활용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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