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정권 말 한국 vs 집권 초 미국

박용 경제부장 입력 2021-04-14 03:00수정 2021-04-14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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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세계경제 새판 짜기
한말미초, 경제정책 시차 좁혀야
박용 경제부장
2년 전인 2019년 3월 19일(현지 시간) 특파원으로 일하며 SK이노베이션의 북미 첫 전기자동차 배터리 공장의 첫 삽을 뜨는 현장을 취재했다. 기공식은 미국 조지아주 북동부 커머스시 외곽 허허벌판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장에서 조지아 출신의 대가수 레이 찰스가 부른 1960년대 노래 ‘조지아 온 마이 마인드’(내 마음속의 조지아)가 흘러나왔을 때 참석자들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지역 인사들과 주민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2600여 개 미래 일자리를 따낸 감격에 젖었다.

당시 SK가 조지아주를 선택한 데는 기업 투자와 일자리를 끌어오려는 조지아주 공무원들의 열정이 한몫했다. 현지 시간 새벽에 한국에서 연락을 해도 그들은 1시간 만에 주지사의 결재까지 받아왔다. 새 공장에서 일할 인력을 기르겠다며 인재 육성 프로그램도 가동했다. 그렇게 얻은 귀한 일자리가 이번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으로 날아갈 위기에 놓였을 때 주지사와 정치인들이 똘똘 뭉쳐 ‘일자리 구명 운동’을 펼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에선 기업은 때려야 표가 된다는 분위기지만, 마스크조차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제조업 기반을 잃어버린 미국에선 기업 일자리는 표가 된다. 정파를 떠나 일자리가 있는 곳이라면 무섭게 덤벼드는 게 미 정치인들이다. 이번 LG와 SK 배터리 소송에서도 그랬다. 블룸버그뉴스는 미 12개 부처와 자동차 회사가 매일 회의를 열고 두 한국 회사의 분쟁을 중재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 무역대표부(USTR)까지 동원해 극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를 두고 ‘바이든의 승리’라고 규정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슬리피 조’(졸린 조)라고 비웃던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석 달간의 행보에선 오히려 속도감이 느껴진다. 미 정보기술(IT) 대기업에 대한 유럽의 디지털세 공세에 대응하고 일자리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법인세 공조를 주도하고 있다. 반도체를 ‘21세기 편자의 못’과 같은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더니 반도체 인프라 재건과 공급대란 해결을 위해 삼성전자 등 글로벌 회사들을 불러 모았다. 벌써 바이든의 석 달이 ‘관세폭탄’으로 세계를 위협하던 트럼프의 4년보다 낫다는 말이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이 바이든 대통령의 대담함을 배워야 한다”는 칼럼까지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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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의 국정 경험이 있는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차량용 반도체가 없어 국내 자동차 공장이 멈출 상황이 될 때까지 두 달간 산업통상자원부 1급 실장 주재 회의 2번을 열었다. 뒤늦게 대만 반도체협회 등을 붙들고 반도체 공급을 사정하고 있지만 뾰족한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선 아직도 기업이 세금을 내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성장 파트너가 아니라 개혁 대상이라는 인식도 강하다.

반도체 대란과 글로벌 법인세 공조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글로벌 경제 새판 짜기의 서막에 불과하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살아남으려면 사자는 가장 느린 영양보다 빨라야 하고, 영양은 가장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한다. 세계는 기업과 일자리를 놓고 ‘의자 뺏기’ 경쟁에 돌입했는데 선거다, 개각이다 해서 느슨하게 움직이다간 먹던 밥그릇조차 지키기 어렵다. 우린 정권 말이지만 저쪽은 집권 초인 ‘한말미초(韓末美初)’의 시기다. 바이든 행정부에 보폭을 맞추려면 경제부처 수장들은 다시 출발점에 섰다는 생각으로 신발 끈을 동여매야 한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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