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찰, 또 흑인 사살…플로이드 사망 1주기 앞두고 폭력 시위 재점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13일 15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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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전국적인 인종차별 시위가 비롯된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또다시 경찰이 흑인 청년에게 총을 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미 전역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사건 발생지에서는 경찰의 과잉 진압을 규탄하는 폭력 시위가 벌어졌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희생자를 애도하며 평화를 호소하고 나섰다.

사건은 11일 오후 미네소타 주도(州都) 미니애폴리스 북쪽에 있는 브룩클린센터라는 작은 도시에서 일어났다. 흑인 남성 던트 라이트(20)는 운전 중 경찰의 지시에 따라 차에서 내렸지만 이후 체포에 저항하고 다시 차에 탑승했다가 총에 맞았다. 라이트는 총에 맞은 채 차로 도주하다가 다른 차량을 들이받고 현장에서 숨졌다. 당시 만기가 지난 자동차등록 스티커를 부착하고 있다는 이유로 라이트의 차를 세운 경찰은 그가 과거 허가 없이 총기소지를 한 혐의 등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바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를 체포하려 했다.

브룩클린센터 경찰은 12일 브리핑에서 경관의 총격이 우발적인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경찰이 이날 공개한 보디캠(몸에 착용한 카메라) 동영상에 따르면 총 3명의 경관 중 한 명이 차에서 내린 그에게 수갑을 채웠고 다른 경관은 그가 체포된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다가 라이트가 갑자기 체포에 저항하며 차에 다시 오르자 세 번째 경관이 그에게 ‘테이저를 쏘겠다’를 외치다가 총을 발사했다. 총을 발사한 경관은 그가 떠난 후 “오, 내가 총을 쐈어”라고 동료 경관들에게 말했다. 브룩클린센터 경찰은 이날 “당시 경관이 테이저건을 쏘려고 했었는데 실수로 총을 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사건 소식이 알려진 이날 밤 100여 명의 시위대가 경찰서 앞에 모여 과잉 진압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경찰에 돌을 던지고 주변 상점의 유리창을 깨는 등 폭력적인 양상을 보였다. 경찰은 최루탄 등으로 맞대응을 했으며 주방위군은 병력을 증강했다. 미니애폴리스와 브룩클린센터 일원에는 12일 야간 통금령이 내려졌고 미네소타주를 연고로 하는 야구, 농구 프로팀의 홈경기는 취소됐다. 시위대는 이날도 거리로 나와 경찰과 밤늦게까지 대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2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희생자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한다”며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고 사건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다시 한 번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폭동이나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시위대의 자제를 호소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저녁에도 트윗에 글을 올려 “오늘 나는 라이트와 그의 가족, 흑인들이 겪는 고통과 분노, 트라우마에 대해 생각한다”며 “신뢰를 재건하고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도록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처럼 즉각적인 대응에 나선 것은 이 사건으로 자칫 작년의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가 재점화되며 사회 불안이 초래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백인 경찰의 목 눌림으로 사망한 플로이드 사건은 다음달로 1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미니애폴리스의 법원에서는 플로이드를 숨지게 한 백인 경찰관 데릭 쇼빈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이 결과에 따라 흑인사회의 분노가 고조될 가능성도 있다. 라이트가 경찰의 총에 맞은 장소는 플로이드 사건이 발생한 지점으로부터 불과 10여㎞ 떨어진 곳이었다. 이날 뉴욕 맨해튼 등 전국 각지에서는 흑인에 대한 경찰의 총격을 비난하는 집회가 잇달아 열렸다.

당시 플로이드 가족의 변호를 맡았던 흑인 인권변호사 벤 크럼프는 이날 성명에서 “이 나라가 플로이드의 비극적 죽음을 대하는 와중에 이 젊은 청년의 죽음을 슬퍼해야 한다”며 “경찰의 유색인종 살인을 멈추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한가”라고 비판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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