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한반도본부장이 꼭 알아야 할 것[광화문에서/윤완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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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정치부 차장
윤완준 정치부 차장
“미국이 우리의 핵심 이익을 위협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겠나.”

중국 측 인사가 북핵 문제에서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우리 정부에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중국 측의 입장은 단호했다. 미국이 중국을 괴롭히는 한 중국도 대북 제재 구멍을 없애는 데 협력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16일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중국 신화통신사 주최로 열린 한중 언론교류 화상포럼에 토론자로 참가했더니 중국 외교관을 양성하는 외교학원의 쑤하오(蘇浩) 교수도 기자의 질문에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희망하지만 현재 미중 갈등이 너무 뚜렷하다. 미중 간에 (관련)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고 밝혔다. 중국이 당장 북핵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북핵은 북-미 간 협상 문제이니 미국과 잘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외교를 통한 해결을 강조하고 북핵 동결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니 협상을 재개할 수 있지 않느냐고도 할 수 있다.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때 ‘브로맨스’를 과시하며 톱다운 방식의 정상 간 담판으로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려 했다. 자기 과시를 좋아했던 트럼프 스타일 때문이긴 했지만 한국과 미국의 북핵 실무 협상자들은 실제로는 톱다운보다 보텀업을 원했다. 문제는 한미가 실무협상을 통해 제대로 된 합의안을 올려 정상 담판을 하자고 해도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까지 날아가도 북한은 실무협상을 거부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정상회담 때는 회담 일주일 전에야 실무협상이 시작됐지만 북한 협상대표 김혁철은 “결정은 김정은 동지가 한다. 나는 권한이 없다”고 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이달 방한 때 얘기한 것처럼 북한에는 실무협상 권한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북한을 바이든 행정부가 선호하는 보텀업 실무협상으로 끌어내려면 우선은 대북 제재를 강화해 북한을 죌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북 제재는 중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 인사의 저 발언은 그래서 의미심장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북핵 문제만큼은 미중 갈등과 상관없이 협력하자고 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중국 입장에선 미중 관계가 북핵 문제보다 상위 개념이다. 중국은 대북 제재로 어려운 북한에 문을 열어주고 북한은 더더욱 중국에 밀착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톱다운이든 보텀업이든 북한을 협상으로 끌어내기 쉽지 않다.

다음 주면 김정은이 대외 메시지를 내놓을 8차 당 대회가 열린다. 정부 내 많은 인사들이 당 대회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 협상 기회가 다시 열릴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하지만 중국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3년간 한미 실무협상팀의 힘든 노력에도 결국 성공하지 못한 비핵화 협상 패턴을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21일 북핵 실무협상을 총괄하는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차관급)에 노규덕 청와대 국가안보실 평화기획비서관이 임명됐다. 미-중-일-러 북핵 대표들과 전화통화 협의로 바쁜 그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얘기를 나눴을까.

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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