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2차 세계대전 영국軍 지휘는 침대서 이뤄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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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위의 세계사/브라이언 페이건,나디아 더러니 지음·안희정 옮김/344쪽·1만8000원·올댓북스

존 레넌의 ‘평화를 위한 침대 시위’ 1969년 존 레넌과 오노 요코. 두 사람은 결혼 직후 일주일간 ‘평화를 위한 침대 시위’를 벌였다. 침대 위에서 방문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며 반전(反戰) 메시지를 전 세계에 내보냈다. Eric Koch, ⓒNationaal Archief, CC0
존 레넌의 ‘평화를 위한 침대 시위’ 1969년 존 레넌과 오노 요코. 두 사람은 결혼 직후 일주일간 ‘평화를 위한 침대 시위’를 벌였다. 침대 위에서 방문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며 반전(反戰) 메시지를 전 세계에 내보냈다. Eric Koch, ⓒNationaal Archief, CC0
프랑스 왕들은 침대에서 국정을 지휘했다. 루이 9세(1214∼1270) 때 법전에는 ‘왕이 국정을 수행하는 곳에 언제나 군주의 침대를 두어야 한다’고 지정했다. 군주의 침대는 7단 계단이 연결된 높은 단상에 있었고 왕은 그곳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었다. 아래의 관리들은 앉거나 무릎을 꿇고 왕을 바라봤다. 누워서 나라를 다스리다니, 지금이라면 당장 몰매 맞을 일이지만 당시에는 권위의 표현이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100년 전도 아닌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침실에서 영국군을 지휘했다. 당시 영국 육군참모총장 앨런 브룩 경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수상의 침실은 언제나 똑같았다. 중국 고관처럼 보이는 빨간색과 황금빛의 드레싱 가운은 윈스턴만이 입을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침대에는 서류와 공문이 걸려 있고, 이따금 아침식사를 끝낸 테이블이 그대로 있었다. 화가에게 그 광경을 그려 보라고 주문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처칠이 침대에서 회의를 주재해 공무를 망쳤다는 기록은 역사에 없다. 저자는 다만 처칠이 루이 14세 같은 절대군주처럼 자신을 연출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꼬집는다.

미국의 두 고고학자가 쓴 이 책은 ‘침대의 역사’를 다룬다. 매일 밤 이루는 잠뿐 아니라 탄생과 휴식, 섹스와 죽음까지 많은 일이 벌어지는 침대. 그런데도 매우 사적인 영역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고 저자들은 본다.

이런 관점에서 책은 시간 순서대로 침대에 관한 역사 이야기를 나열한다. 침대가 처음 등장한 것은 언제인지, 그 형태가 갖춰진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다소 건조하게 서술돼 있다.

지금은 침실이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과거에는 부의 상징이자 권력과 신분을 나타내는 징표였음이 드러나는 대목은 흥미롭다.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정찬(正餐)용 카우치 침대인 클리네에 기대 함께 식사하는 것을 세련된 사교 활동으로 여겼다. 자신을 뽐내려는 욕망에 갈수록 화려해진 클리네는 시간이 지나자 시신을 매장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기원전 2000년에 만들어진 무덤, 기원전 5세기에 제작된 장례용 화병에 등장하는 클리네 이야기가 뒷받침된다.

접을 수 있는 파라오의 침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크게 만들어진 15세기 부르고뉴의 필립 선공(善公)과 포르투갈 이사벨라의 혼인 침대, 군대의 접이식 야전침대와 외교 행사용 침대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1430년 제작된 필립과 이사벨라의 혼인 침대는 길이 5.79m, 너비 3.80m에 달했다고 한다.

침대를 중심으로 고대부터 미래까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다만 ‘세계사’라는 제목과 달리 대부분의 이야기는 유럽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역사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나 통찰을 찾기보다 역사 속 시시콜콜하지만 씩 웃을 수 있는 이야기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을 만하다. 원제는 ‘What We Did in Bed’.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침대 위의 세계사#브라이언 페이건#나디아 더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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