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구글이 멈췄다… 내 일상도 함께 멈췄다[광화문에서/김재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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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산업1부 차장
김재영 산업1부 차장
한때 ‘이영애의 하루’라는 유머가 유행했다. 당시 워낙 인기 많은 광고 모델이다 보니 그가 출연한 광고 제품만으로도 하루를 살 수 있다는 농담이었다. 요즘 우리의 하루를 재구성하면 어떨까. 구글, 네이버, 카카오와 함께하는 하루쯤 되지 않을까. 쇼핑 뉴스 금융 등 일상생활부터 업무까지 플랫폼을 떼놓고는 상상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지난달 12일 오전 갑자기 유튜브가 먹통이 됐다. 원격수업 핑계로 중학생 아들이 하루 종일 유튜브만 끼고 살던 터라 솔직히 잘됐다 싶었다. 하지만 한 정보기술(IT) 기업이 진행하던 온라인 콘퍼런스가 접속 장애를 겪었다는 얘기를 듣고 아차 했다. 유튜브는 이제 단순한 놀잇감이 아닌 거였다.

그러던 차에 14일 저녁 유튜브, 지메일, 구글클라우드, 구글미트(화상회의), 지도, 캘린더 등 구글 서비스 대부분이 동시에 멈추니 압박감이 더 심했다. 회사 이메일 계정과 연동해 놓은 이메일을 열어볼 수 없었고, 다음 날 일정도 확인할 수 없었다. 구글의 영향력이 큰 미국에선 혼란이 상당했다. 원격수업을 하던 학교는 휴교를 결정했고, 월스트리트저널(WSJ) 같은 언론사에선 기사 전송 프로그램이 멈춰 기자들은 회사 안의 누군가에게 전화로 기사를 불러야 했다. 사물인터넷(IoT) 연동 기능을 갖춘 구글 홈을 사용하던 사람들은 조명이나 TV를 켤 수 없었다. WSJ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스노데이’(폭설로 인한 마비처럼 인터넷 장애로 인한 마비라는 의미)였다고 했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하고 빈번하게 나타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구글, 아마존 등이 제공하는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공격도 위협적이다. 최근 미국 국방부, 재무부, 심지어 핵안보국(NNSA)까지 해킹에 뚫렸다. 원격근무가 확대되자 해커들은 보안이 취약한 재택근무자의 개인컴퓨터를 통해 기업 본진을 노리기도 한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달 발생한 유튜브 장애에 대해 인터넷 서비스의 속도 저하나 장애가 발생하지 않도록 업체의 관리 책임을 묻는 일명 ‘넷플릭스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처음 적용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서비스 중단 시 부가통신사업자의 고지 의무 기준 시간을 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재발 방지 대책과 피해 보상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사이버재난’을 일상을 마비시키고 엄청난 재산 피해를 주는 국가 재난으로 관리해야 한다. 현재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상 자연재난과 사회재난 어느 곳에도 사이버재난은 명시돼 있지 않다.

IT업계의 20년 전 농담 하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자동차업계를 조롱했다. “만약 제너럴모터스(GM)가 컴퓨터산업과 같은 수준을 갖추게 된다면 1갤런(약 3.8L)으로 1000마일(약 1600km)을 갈 수 있는 25달러(약 2만8000원)짜리 차를 몰게 될 것이다.” GM이 발끈했다. “하루에 두 번 이상 ‘치명적 오류’라며 멈춰 버리는 차를 타고 싶습니까.” 디지털을 벗어나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인터넷 오류가 치명적 재난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비를 해야 할 시점이다.

김재영 산업1부 차장 redfoot@donga.com
#구글#이영애#스노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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