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재-남농 한국화… 佛 현대미술 그라소… 남도에 피는 ‘예향’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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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립미술관 내년 3월 개관
근현대 다양한 작품 선보여
수묵화 등 한국 전통화법 차용
그라소 신작 풍경화에 관심 집중

위쪽 사진은 페로탱 상하이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로랑 그라소의 개인전 ‘Future Herbarium’(미래 식물 표본실). 뒤편의 LED 스크린 작품 ‘Solar Wind’(태양풍)의 빛이 앞에 있는 꽃 모양의 브론즈 조각을 비춘다. 아래 사진은 의재 허백련(1891∼1977)의 ‘위진팔황’(1953년).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위쪽 사진은 페로탱 상하이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로랑 그라소의 개인전 ‘Future Herbarium’(미래 식물 표본실). 뒤편의 LED 스크린 작품 ‘Solar Wind’(태양풍)의 빛이 앞에 있는 꽃 모양의 브론즈 조각을 비춘다. 아래 사진은 의재 허백련(1891∼1977)의 ‘위진팔황’(1953년).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14일 전남 광양시의 전남도립미술관 지하 1층 수장고에는 프랑스 작가 그자비에 베이앙의 커다랗고 새빨간 조각이 운반되고 있었다. 베이앙은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의 로비를 장식한 작가로 국내에도 친숙하다. 그런데 남종화와 서예 대가를 배출한 ‘예향’ 남도에 베이앙이 무슨 일일까.

내년 3월 정식 개관을 앞둔 미술관의 이지호 관장은 “베이앙 작품은 로비나 주요 장소에 전시될 예정”이라며 “남도의 전통도 중요하지만 국제적 미술사에 발맞춘 ‘새로운 예향’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지역의 열망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베이앙의 조각 맞은편에는 한국의 근대 회화 작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수장고 속 풍경처럼 개관 전시도 전통에 현대적인 색채를 가미했다.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다’라는 가제가 붙은 전시의 중심은 의재 허백련과 남농 허건. 전통적인 ‘대가’로 여겨지는 이들과 프랑스 현대미술 작가 로랑 그라소(48)의 신작이 전시된다.

그라소는 미술사나 역사, 과학에서 소재를 차용해 회화부터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작가다. 프랑스 미술을 세계화하는 데 기여한 젊은 작가들에게 주는 ‘마르셀뒤샹 프라이즈’를 2008년 수상하고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국내에서는 2010년 삼성미술관 리움의 재개관전에 참가했고, 근현대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뮤지엄2의 외벽에 네온사인 작품 ‘Memories of the Future(미래의 기억)’를 설치했다. 국내 미술관에서 그라소 작품이 대규모로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이 관장은 “해외 유명 작가들이 국내 그룹전에 종종 참여하지만, 작품 수가 적어 제대로 된 맥락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며 “이번에는 그라소의 작품을 4개의 전시실에서 ‘미니 개인전’급으로 보여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라소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의 수묵화나 전통화법을 학습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한창 신작을 작업 중인 작가는 풍경화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한다.

나머지 5개 전시실에서는 회화의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구성한다는 것이 학예팀의 설명이다. 최근 국제 미술계는 시각적인 효과를 강조한 회화 작품이 다시 각광받고 있는 추세다. 이에 비해 국내 미술관에서는 개념이나 설치 미술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개관전은 남도의 전통을 회화의 맥락에서 다시 짚어볼 예정이다. 특히 폭이 7∼10m에 이르는 대작이 다수 출품될 예정이어서 기대를 모은다. 참여 작가는 이이남 허달재 김선두 허진 등 국내외 작가 9명이다.

미술관이 개관하기 전 빈 공간에서는 사전 전시도 열리고 있다. 프랑스 루시드 리얼리티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가상현실(VR) 작품 3점을 선보인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 걸린 모네의 작품, 네덜란드 작가 피터르 브뤼헐의 ‘아이들 놀이’와 프랑스 생토메르 성당에서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듣는 ‘모차르트 360°’를 감상할 수 있다. 지역주민의 호응이 높아 내년 1월까지 주말 사전 예약분은 모두 마감됐다.

미술관은 장기적으로는 자료 수집과 작품 보존 등 미술사적 기반을 다지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이 관장은 “남도는 의재와 남농은 물론 서예에 소전 손재형과 회화에 김환기, 오지호, 천경자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배출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을 발굴·정리하고 연구해 출판하는 등 미술관의 기본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종이 작품이 많은 남도의 특성에 맞춰 지류 작품의 보존 수복에 관한 국제 세미나도 열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광양=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전남도립미술관#한국화#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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