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언제쯤 대중과 진짜 소통을 할까[오늘과 내일/신석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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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쿠바 따라 5년 주기 당 대회 개최
대중과 진솔한 소통 없인 흉내 내기 불과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내년 1월 북한에서는 김정은 집권 만 10년째를 맞아 조선노동당대회가 열린다. 이번 8차 대회는 2016년 5월 7차 당 대회에 이어 5년 만으로 김정은 집권 이후 두 번째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흔적기관처럼 만들어버린 당의 기능을 활성화해 온 연장선에서 북한도 중국이나 쿠바처럼 정기적으로 당 대회를 열어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사회주의 정상국가’임을 대내외에 홍보하려는 듯하다.

중국과 쿠바, 북한 등 현존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공산당이 최고 권력기관이다. 당 대회는 당의 최고 지도기관이자 의사결정 기구로 직전 당 대회 이후 국가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국가운영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미국과 국제사회의 겹겹이 경제제재와 외교적 단절,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자체적인 고립 속에서 당 대회를 여는 평양의 분위기는 암울해 보인다. 5년 전 당 대회에서 김정은이 스스로 인민들에게 공언한 ‘김정은식 경제개혁’도, ‘핵 무력을 짧은 시간에 고도화한 뒤 대대적인 대외 평화공세를 통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자’는 전략도 현재로서는 수정이 불가피하다.

형식과 절차의 측면에서도 ‘김정은식 당 대회’에는 정말 중요한 게 빠져 있다. 사회주의자들이 ‘민주적 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라고 말하는 최고지도자와 엘리트, 대중 3자 간의 격의 없는 위아래 소통의 제도와 문화다. 당 대회의 안건을 마련하는 과정에 최고지도자와 당이 엘리트와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는 형식으로 기존의 정책에 문제가 있다면 대안을 만들고 잘해 온 것은 더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는 의사결정 프로세스인 것이다.

1991년 4차 당 대회를 앞두고 쿠바 공산당이 사용한 ‘대중 집회(Llamamiento)’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갖은 원조와 우호무역을 제공했던 소련이 자본주의로 체제 전환을 모색하면서 ‘특별한 시기’라는 초유의 경제위기를 만난 피델 카스트로 쿠바 공산당 제1서기는 그야말로 머리를 조아리고 인민들의 의견을 구했다.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해 달라’는 ‘호소문’을 돌리고 주민 토론회를 열었으며 곳곳에 익명 건의함도 설치했다.

공산당에 속내를 말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숙청된 이들을 너무도 많이 보아온 쿠바인들은 처음엔 믿지 않았다. 아바나대 박사 출신 호세 아리오사 씨 역시 그랬다. 2007년 서울과 아바나에서 만났던 그는 “당 간부들이 나서서 ‘솔직하게 건의해 달라.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설득했다”고 회고했다. 결국 인민들은 마음을 열었고 정치와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희망사항을 제안했다. 카스트로는 인민의 이름으로 공산당을 쇄신하고 제한적이나마 경제 개혁과 개방 정책을 만들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카스트로의 성공은 국가정책의제 형성 과정에 관한 코브와 로스의 동원모델(mobilization model)의 실제 사례였다. 반면 최고지도자와 한 줌의 엘리트들이 의제 형성 과정을 독점하는 내부주도모형(inside initiative model)에 해당하는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위기로 가장 고통받는 대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의지도 능력도 없는 최고지도부의 저급한 수준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쉽게들 말하는 소통이야말로 지극히 정치적인 현상이다. 진정한 소통은 권력자들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자유롭고 안전하게 말할 기회를 보장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년 1월 당 대회에서 김정은은 또 ‘사랑하는 인민 대중’을 운운하며 말잔치를 벌이겠지만 사회주의 선배 카스트로의 지혜를 실천할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현명한 대중은 핵을 내려놓고 ‘진짜 정상국가’가 되는 길을 반드시 알려줄 텐데 말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김정은#대중#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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