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에 프리패스 통행권 쥐여준 국회[오늘과 내일/하임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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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룰 완화했지만 의결권 제한은 여전
하루만 주식 가져도 이사·감사 해임 청구도

하임숙 산업1부장
하임숙 산업1부장
“도대체 무엇을 위한 입법인지 모르겠어요. 의도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기업들을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의 무차별 공격에 노출시키게 됐어요. 기업 하나 없어지는 건 눈도 깜짝 안 하겠다는 뜻인지….”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의 이 말은 경제계의 심경을 대변한다. 설마설마하던 경제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이 통과되고, 해고자의 노조 가입과 노조의 생산시설 점거가 가능해진 노동법이 통과되자 경제계는 그야말로 경악했다. 밖으론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격에 시달리고, 안으론 해고자들이 주도하는 파업에 시달리게 생겼기 때문이다.

경제계의 우려가 엄살에 불과할까.

여당은 이번에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3%룰을 완화한 걸 두고 “기업들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주장한다. 감사위원을 뽑을 때 지분 100%가 있어도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만 인정한다는 게 당초 안이었다면 이번엔 이를 특수관계인 각각에 3%씩 인정하도록 한 걸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애당초 100% 지분을 가진 측의 의결권을 왜 3%로 제한해야 하는 걸까.

기업의 감사위원은 기업의 업무 및 회계를 감사한다. 재무회계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이 맡을 수밖에 없고, 이들은 원한다면 기업 내부의 정보를 다 파악할 수 있다. 이런 감사위원들이 임명권을 가진 사주의 눈치를 보느라 회사의 경영에 문제가 있어도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는 게 지분을 제한해야 한다는 근거다. 과연 그럴까.

두산그룹이 한참 어려웠던 1995년에 그룹 기조실장을 시작으로 나중에 회장까지 맡아 기업을 회생시키는 데 성공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감사위원회가 문제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고 평소 말한다. 그런데 그는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은 뒷말을 이렇게 밝혔다. “그렇지만 그 문제가 크지는 않다. 감사들이 사주의 눈치를 본다기보다 세부 사안을 경영진만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감사위가 지적할 만한 이슈가 있으면 미리 문제가 없게끔 조정한다. 문제제기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사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단정 짓는 건 기업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주장이다.”

3%룰이 시행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간 정부는 대기업들이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어 문제라며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도록 유도했다.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착실히 이 지도에 따랐다. 예를 들어 LG그룹은 오너 개개인들 대신 ㈜LG가 LG전자 LG화학 등 대부분 계열사 지분을 30% 이상씩 갖고 있다. 완화된 3%룰이 시행돼도 LG 계열사들은 감사를 선임할 때 오너 측 의결권을 3%만 행사할 수 있다. 글로벌 기업 간 첨예한 기술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배터리 분야의 세계 톱급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도 LG화학이 100% 지분을 들고 있지만 감사위원 선임 시 3% 의결권만 행사할 수 있다. 향후 기업 공개 시 중국 등지의 경쟁 기업들이 지분을 확보해 감사위원을 충분히 밀어 넣을 수도 있다. 기업의 기밀이 새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여기다 이번 상법 개정안으로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때 주식을 6개월 이상 의무 보유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 이론상 1∼3% 지분을 하루만 보유해도 이사·감사의 해임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을 위한 법 개정인가. 우리 기업을 혼내주려고 기술을, 때로는 경영권을 해외에 고스란히 갖다 바칠 셈인가.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
#헤지펀드#프리패스#통행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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