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을 견딘 캐럴[김학선의 음악이 있는 순간]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입력 2020-12-05 03:00수정 2020-12-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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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빙 크로스비 ‘White Christmas’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캐럴이 사라졌다. 한두 해 된 이야기는 아니다. 2014년에도 ‘캐럴이 사라진 크리스마스’란 뉴스가 나왔으니 연말에 캐럴이 들리지 않은 지는 꽤 된 것 같다. 저작권 때문이란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났다. 경제가 어려워서 캐럴을 안 듣는다는 분석을 내놓는 이도 있지만 이는 갖다 붙이기에 가깝다. 오히려 사회 분위기가 침체될수록 더 밝은 음악이 인기를 얻기도 한다. 이현령비현령에 가까운 이야기다.

어떤 이유에서건 캐럴이 들리지 않는 연말은 아쉽고 허전하다. 어릴 때 12월이 되면 거리에선 쉼 없이 캐럴이 흘러나왔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때는 집집마다 캐럴 음반 한 장씩은 있는 것 같았다. 계절이 오면 어김없이 당대 최고 스타의 캐럴 음반이 새롭게 나왔다. 똑순이 김민희의 캐럴은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고, 개그맨 심형래는 “달릴까 말까” 하며 아이들을 웃게 했다. 캐럴의 주인공이 가수인지 연기자인지 희극인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인기가 얼마나 더 많은지가 중요했다. 그만큼 수요가 있었고 인기의 크기만큼 많이 팔렸다.

캐럴의 주인공이 가수인지 연기자인지 희극인인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음반의 질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한철 장사용으로 값싼 유행어를 얹은 가볍디가벼운 캐럴이 주를 이루었다. 그때의 수많은 캐럴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남은 캐럴은 별로 없다. 10년 뒤를 생각하며 만든 음반이 아니었고, 음반의 생명은 대부분 그해 크리스마스가 지나면서 끝났다. 내리는 눈처럼 많은, 또 그만큼 빨리 사라지는 캐럴 사이에서 시간의 흐름을 견뎌낸 음악이 있다.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다. 무수하게 쏟아져 나온 캐럴 음반 사이엔 빨간 산타클로스 모자를 쓴 빙 크로스비 음반도 있었다. 그 무수한 음반이 모두 사라져갈 때도 빙 크로스비의 음악만은 살아남았다. 빙 크로스비의 목소리는 기품이 있었고, 목소리를 감싸는 오케스트라 반주는 고풍스러웠다. 음악에서 자연스레 묻어나는 기품과 고풍은 유행 따윈 모른다는 채 고고하게 서서 그대로 고전이 되었다. 한 달짜리 음악들이 차례로 명멸해가는 동안 1942년에 나온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는 100년이라는 시간을 향해 가고 있다.

이젠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새로운 캐럴 고전이 된 시대지만 나의 세대에겐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가 영원한 고전이다. 겨울이 오고 연말이 될 때 빙 크로스비의 목소리를 듣는 기분은 특별하다. 빙 크로스비의 목소리는 계절과 캐럴에 특화돼 있다. 빙 크로스비는 “조용히 부드럽게 노래한다”는 뜻을 가진 크루너 보컬의 대명사다.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는 캐럴은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포근함과 맞닿아 있다. 거리에서 빙 크로스비의 목소리가 들리는 상상을 잠시 해본다. 추워진 거리와 그만큼 추운 마음 사이로 그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릴 때 잠시나마 일상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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