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통계는 객관적? 숫자의 함정에 빠지셨군요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0-10-24 03:00수정 2020-10-24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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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거짓말을 한다/알베르토 카이로 지음·박슬라 옮김/300쪽·1만7500원·웅진지식하우스
현대사회에서 도표는 복잡하고 다양한 정보를 쉽게 전달하는 도구지만 사실의 특정 측면만 과장하거나 심지어 조작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백악관 서쪽 별관 벽에 걸려 있는 지도를 보자. 2016년 미국 대선 결과를 지역별 정당 지지도로 나타낸 지도다. 미국 대부분 카운티(county)가 공화당을 나타내는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그러나 일반 유권자 투표는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48.2%를 득표해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46.1%를 근소하게 앞섰다. 각 카운티의 인구수를 반영한 ‘거품 차트’를 보면 두 후보의 득표수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원제는 ‘차트는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가(How Charts Lie)’다. 파워포인트와 프레젠테이션의 시대에 도표는 유효한 무기다. 그러나 가짜뉴스를 배양하기에 적절한 토양이기도 하다. ‘차트는 주장을 펴거나 논쟁할 때 강력한 설득 도구가 되지만, 차트만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도표로 우리의 인식을 속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막대그래프에서 양(量)을 나타내는 세로 기준점을 바꾸면 사소한 차이가 크게 과장된다. 그 반대도 왜곡을 가져온다. 21세기 지구 평균 온도의 변화를 0도에서 시작하는 그래프로 만들면 거의 변화가 없는 수평선처럼 보인다. 그러나 0.1도의 평균온도 변화도 지구 생태계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다.

시간적 변화를 나타내는 가로축을 잘라버리는 것도 올바른 판단을 막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취임한 뒤 고등학교 졸업률이 꾸준히 증가했다는 그래프를 제시했다. 그러나 실제 고등학교 졸업률은 수십 년째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전임자들의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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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 백인 남성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흑인 교회에서 권총을 난사해 9명을 살해했다. 범인은 인종차별 조직의 웹사이트에서 ‘강력범죄 가해자 인종별 피해자 분포’라는 도표를 보고 분노해 범행을 저질렀다. 도표를 보면 강력범죄 백인 가해자의 4%만이 흑인을 겨냥했지만, 흑인 가해자의 39%가 백인을 대상으로 강력범죄를 저질렀다. 숫자는 맞다. 그러나 여기엔 미국 사회의 인종집단별 인구수가 간과되어 있었다. 도표를 피해자 중심으로 바꿔보자. 백인 피해자의 56%가 백인 범죄자에게서, 흑인 피해자의 62%가 흑인 범죄자에게서 피해를 입었다. 큰 차이가 없다.

뉴스 수용자들의 무지도 왜곡을 불러온다. 동아시아의 태풍 진로 예측처럼, 미국 남부의 허리케인 진로 예측도 북상하면서 넓어지는 원뿔 모양으로 소개된다. 예측 가능한 경로의 범위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미국인은 이를 ‘허리케인이 북상할수록 강력해진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1999년부터 10년간, 미국 수영장에서 익사하는 사람의 수와 배우 니컬러스 케이지가 출연한 영화 제작 편수는 대략 같은 크기로 ‘동조’했다. 가짜 상관관계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선택된 ‘우스개 사례’이지만, 의도적인 데이터 조작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데이터를 고문하면 뭐든 자백한다.”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의 말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숫자는 거짓말을 한다#알베르토 카이로#박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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