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와 만난 랑랑, 성숙해진 선율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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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 발매, 12월 예술의전당 연주회 예정

랑랑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새 앨범은 ‘기교파’로 알려졌던 그의 진지함을 보여준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랑랑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새 앨범은 ‘기교파’로 알려졌던 그의 진지함을 보여준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피아니스트 랑랑(38). 현란한 기교와 압도적 볼륨으로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이나 리스트의 기교적 난곡을 부수듯 두들기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얼마간 과장되게 느껴지는 표정과 동작, 무대 매너도 함께. 그가 대(大)바흐의 90분짜리 대곡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DG(도이체 그라모폰) 레이블로 발매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랑랑은 진지한 예술가이며, 이 음반으로 이를 증명했다”고 평했다.

그의 골드베르크에서 과장이나 허식은 느껴지지 않는다. 장식음의 처리가 표준적이고, 느린 변주들은 더 느려지지만 템포 처리도 큰 틀에서는 오히려 중용적이다. 그럼에도 이 음반은 낭만적이다. 무엇 때문일까. 그는 프레이징(분절법)을 통상의 연주보다 큰 단위로 이어간다. 적절한 페달링이 화음의 아름다움을 연속해서 짙게 드러낸다. 그래서 ‘노래’가 두드러진다.

각 성부(聲部) 간의 대비는 충분히 아름답지만, 노래와 조형성이 겨루는 부분에서는 어떤 성부를 살짝 숨기고 노래를 앞세운다. 변칙인가? 아니다. 모든 개성이 정교한 설득력 안에서 표현된다. 그의 강한 손가락은 바흐의 이 조형적 대곡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음표마다 또랑또랑 이가 고르니 소리가 윤택하다. 바흐는 불면증에 시달리던 카이절링크 백작의 의뢰로 이 곡을 썼다. 편하고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랑랑은 열일곱 살 때, 한국 나이로 ‘낭랑 18세’ 때 피아니스트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앞에서 이 곡을 처음 연주했다. 영상 인터뷰에서 그는 “20년 넘게 지난 지금 이 곡에 대한 음악적 연구가 정점에 이르러 앨범을 냈다”고 밝혔다. 3년 전부터는 옛 건반악기 연주자인 안드레아스 슈타이어와 함께 이 곡을 공부했다고 했다.

두 장짜리 앨범 외에 음반 넉 장을 담은 ‘디럭스 버전’도 냈다. 바흐가 활동했던 라이프치히 성(聖) 토마스 교회에서의 연주 실황 녹음을 함께 담았다. 그는 “성 토마스 교회에서 바흐의 정신을 느끼며 집중할 수 있었다. 스튜디오 녹음처럼 엄밀하지는 않지만 거기서 느낀 ‘불꽃’ 덕에 즉흥적이고 아름다운 부분들이 나왔다. 그래서 같이 발매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결혼하면서 한국과 한발 가까워졌다. 장인은 독일인, 장모가 한국인이다. “장모님께서 항상 맛있는 불고기를 만들어 주시죠. 남자에게는 결혼이 더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아요. 여성들은 원래 성숙하지 않나요? 그러니 남자에게는 결혼이 더 이득이죠. 하하.”

랑랑은 12월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랑랑#바흐#골드베르크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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