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중독’으론 자영업 눈물 못 닦는다[오늘과 내일/박용]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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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비중 높은 한국 경제
거리 두기 속 생존의 길 터줘야

박용 경제부 차장
박용 경제부 차장
서울 종로구 신문로의 오래된 식당이 5일 문을 닫았다. 유력 정치인 단골 때문에 정권이 바뀌고 손님이 줄어 힘든 적도 있었지만 꿋꿋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막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앞에선 그만 손을 들고 말았다. 식당 직원은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걱정에 “이젠 실업자”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식당의 마지막을 함께한 단골들의 마음은 돌덩이를 안은 것처럼 무거웠을 것이다.

인근 무교동에서 51년째 구두 수선을 하고 있는 70대 A 씨는 지난달 오랜만에 1주일 쉬었다. 몸도 불편한 데다 수입마저 줄자 문을 닫았다. 주변 건물을 돌며 직장인들의 구두를 걷어와 닦아 주고 인당 월 2만 원을 받았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외부인의 건물 출입이 막혔다. 출근한 직장인도 줄었다. 일감도 끊겼다. A 씨는 “요즘 참 힘들다”고 했다.

코로나19 재난의 최대 피해자는 환자와 가족이지만 식당 빵집 슈퍼 등 동네 가게 주인과 직원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은 자영업자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5.3%)을 크게 웃도는 20%대를 맴돈다. 코로나19 대책에서 자영업자 맞춤 대책이 더 긴요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격상된 상황에선 긴급재난지원금을 1차 때처럼 모두에게 주는 건 자영업자들에게 당장 도움을 주지 못한다. 가게 영업을 제한하면서 소비를 하라고 돈을 푸는 격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장기전이다. 거리 두기 3단계 격상 가능성까지 대비해야 한다. 미국이 인당 1200달러의 현금을 지급한 건 우리의 3단계에 해당하는 봉쇄령으로 미국인 98%가 자택 대기 명령을 받고 경제가 마비된 상태에서 소득이 끊긴 사람을 위해 ‘비상금’을 나눠준 것이다. 우리는 K방역의 성공을 해외에 자랑하면서 나라 곳간을 열고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나눠 줬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재난지원금을 또 풀어야 한다면 격상된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해 피해를 본 영세 상인과 소상공인에게 집중하는 맞춤형 대책이 맞다. 그들이 잘못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재난 피해자를 돕는다는 취지에도 부합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4∼6월) 도소매 숙박 음식점업 등 서비스업 대출이 전 분기보다 47조2000억 원 늘었다. 가게 주인들이 대출로 버티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수입이 끊긴 상황에서도 주인들이 고용을 유지할 수 있게 ‘급여보호프로그램(PPP)’을 마련했다. 먼저 대출을 해주고 그 돈을 직원 인건비로 쓰면 상환을 면제하는 식으로 신속하게 지원한 점이 우리와 다르다.

자영업자들이 이런 지원금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건 바이러스 걱정 없이 장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최전방에서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가장 먼저 매달려야 할 일은 급한 불을 끄는 방역이다. 환자가 느는데 재난지원금 타령을 하는 건 ‘재난지원금 중독’ 소리를 듣기 딱 좋다.

그들이 할 일은 따로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경제는 상극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했더니 도소매 음식 숙박업 등 소상공인의 61.4%가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 격상을 반대했다. 매출이 줄고 경기 침체가 우려된다는 게 주된 이유다. 자영업자들이 동참하지 않으면 사회적 거리 두기도 성공할 수 없다.

뉴욕시는 코로나19 환자가 줄자 가게 앞 도로 주차공간을 야외 식당처럼 이용하게 규제를 풀었다. 감염 위험이 높은 실내 영업은 제한하되 야외 영업을 양성화해 장사할 공간을 내준 것이다. 식당 1만여 곳이 참가할 정도로 호응이 있었다. 방역과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온라인이든 야외든 거리 두기 속에서도 자영업자들이 숨 쉴 공간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재난지원금#자영업자#코로나19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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