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덕 들어선 부동산 정책[오늘과 내일/고기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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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에 집단저항하고 공개 조롱까지… 정부 내에서도 정책 구심점 안 보여

고기정 경제부장
고기정 경제부장
대통령 지지율이 아직도 40∼50%를 오르내리고 거대 여당의 충성과 호위가 여전하지만, 적어도 부동산 정책은 이미 레임덕이다. 역대 최강이라는 대책이 조롱거리가 되고, 정책 실패 책임론이 대통령에게 쏠려가고 있다.

인터넷에선 1일부터 부동산 세금 인상에 반대하는 누리꾼들의 ‘실검 챌린지’가 시작됐다. 특정 단어나 문장을 집단 검색해 인위적으로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리는 식이다. 국토교통부 장관 비판, 조세저항 등의 내용이 실검 순위에 오르다 17일엔 대통령 이름까지 등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주택 양도세 중과세에 빗대 ‘치킨을 2마리 먹는 사람을 양도세로 징벌하라’는 글이 올라왔다. ‘은퇴자가 비싼 메뉴를 드시려 하면 밥그릇 자체를 종부세 명목으로 박살 내 달라’는 말도 있었다.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 정책은 줄곧 부자를 타깃으로 했다. 명목상으로야 투기꾼을 잡겠다고 했지만 가격과 주택 수 기준으로 세금을 물렸으니 부자 증세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정권 초기에는 부자들을 때리면 집값이 안 잡혀도 국민들이 시원해하기라도 했다. 이제는 벌금이나 다름없는 고강도 보유세와 취득세를 물린다고 해도 예전의 감동이 없다. 한국갤럽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4%는 부동산 정책을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했고, 61%는 향후 1년간 집값이 지금보다 더 오를 것이라고 답했다.

이러니 국토위 소속 여당 의원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집값 안 떨어질 것”이라는 말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 같다. 청와대가 연일 각 부처에 ‘혁명적 방안’을 갖고 오라고 채근하지만 오히려 중구난방식 방안들이 쏟아지며 갈피를 못 잡는 모양새다. 그간 수도 없이 대책이 쏟아져 나왔어도 집값 잡는 데 실패했는데, 이제는 대책 자체가 뒤엉키며 충돌하고 있다.

관건은 공감과 기대다. 정부가 진단하는 문제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야 하고, 정부가 내놓는 대안에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은 그게 안 된다.

5년 전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현재 우리 경제는 총체적 위기”라며 경제 정책이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청와대가 긴급 브리핑을 열더니 이틀 뒤에는 A4용지 9장 분량의 보도자료로 문 대표 주장을 반박했다. “근거 없는 위기론은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위축시켜 경제 활성화에 역행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시기는 이미 청년실업률이 11%를 넘어 거의 16년 만의 최고치를 찍던 때였는데도 말이다. 정권 초부터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부동산 정책이 다 작동하고 있다”고 강변한 현 정부가 그때와 다르다고 할 수 있나. 공감이 사라진 이유다.

2006년 11월 노무현 정부 당시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 이백만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정문수 경제보좌관이 한꺼번에 사표를 냈다. 추 장관의 즉흥적인 신도시 건설 발표로 수도권 집값이 폭등한 직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문책 인사를 하지 않던 노 전 대통령도 틀을 새로 짜기 위해선 사람부터 바꿔줘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문 대통령도 공급 확대를 주문하고 나섰다. 틀을 새로 짜려는 시도가 보인다. 하지만 그 말을 처음 꺼낸 건 3년 내내 부동산 정책 주무를 맡아 온 국토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재차 힘을 실어주던 자리에서다. 그래서 기대의 효과가 반감된다는 사람이 많다. 부동산 정책에 훈수 두는 장관, 지자체장이 늘어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게다. 부동산 정책의 레임덕은 이렇게 깊어지고 있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

#레임덕#부동산 정책#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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