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사회 앞당기는 유산 기부, 국내선 하고 싶어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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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英 등 유언 통한 사후기부 활발… 국내선 전체기부금의 0.5% 불과
유언장 문화-주식기부 활성화 필요… “증여세 면제 등 관련법 개정해야”
자선단체협, 올부터 캠페인 본격화

그래픽=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그래픽=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올해 2월 103세로 별세한 미국 배우 커크 더글러스는 ‘OK목장의 결투’ ‘스파르타쿠스’ 등에 출연한 개성파 연기자다. 그는 자신의 재산 중 5000만 달러(약 600억 원)를 자신과 아내가 설립한 더글러스재단에 기부했다. 총 재산 6100만 달러의 80%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기부금은 그의 모교인 뉴욕 세인트로렌스대와 로스앤젤레스 아동병원, 시나이 템플 등을 후원하는 데 쓰이고 있다.

세계 최대 위탁급식업체 커즌스의 최고경영자 리처드 커즌스도 4100만 파운드(약 620억 원)를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에 기부했다. 커즌스는 2017년 말 호주 시드니에서 가족과 함께 관광용 수상 비행기를 탔다가 추락사고로 숨졌다. 그는 사고 발생 1년 전 작성한 유언장에 자신과 두 아들이 사망하면 유산 대부분을 옥스팜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고 있던 옥스팜은 커즌스의 기부금으로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영국 금융컨설팅업체 핀스버리의 롤런드 러드 창업자는 2011년부터 재산의 10%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면 상속세 10%를 감면해주는 ‘레거시 10’(유산기부 캠페인)을 전개했다. 그의 의도에 억만장자 기업들이 동참 의사를 밝혔는데, 이들의 기부금액 규모는 5억 파운드(약 76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후 영국에선 유산 기부가 전체 기부금의 25%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기부서약운동을 통해 유산 기부 문화 확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의 유산 기부 금액은 2012년 234억 달러에서 2017년 357억 달러로 50% 넘게 늘었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유산 기부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유산 기부는 ‘유언을 통해 상속 재산이 공익 목적에 사용되도록 자녀, 친족 등 법정 상속권자가 아닌 공익법인 등 제3자를 지정해 기부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피상속인이 생전에 미리 유언장을 작성해 기부 의사를 밝히고 사망 시 기부가 진행된다. 반면 한국에서 유산 기부는 매우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16년 한국의 전체 기부금(12조 원)에서 유산 기부는 0.5%에 불과하다. 외국처럼 국내에서도 유산 기부가 뿌리내리기 위해선 세제 감면과 같은 혜택이 주어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계를 은퇴하고 웰다잉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는 원혜영 전 의원은 “부를 축적한 사람들에게 주식 기부를 유도하고 그들에게 (세제 감면 혜택 등)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상법 등 관련 법 개정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일하 한국자선단체협의회 이사장은 “현행법에선 기업에서 주식을 비영리기구(NGO)에 기부해도 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주식을 기부하면 증여세를 내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5% 이상의 지분을 특정재단에 기부하면 기부금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을 증여세로 내야 한다. 따라서 “기부를 목적으로 주식을 기부하면 증여세를 내지 않도록 하는 등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게 이 이사장의 주장이다.

한편 자선단체협의회는 9월에 유산 기부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유산 기부 캠페인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유산 기부#사후기부#한국자선단체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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