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하지 말고, 환경을 만들어라[Monday DBR]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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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중소기업 대표가 필자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놨다. 부친으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분이었다. 이 회사 직원들은 서로 소통하거나 협력하지 않고 따로따로 일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작은 회사가 성장하려면 직원 모두가 한 팀처럼 똘똘 뭉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아무리 강조해도 직원들이 잘 안 변한다는 얘기였다. 외부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조직문화 전담 직원도 따로 뒀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했다.

기업 컨설팅을 하다보니 이 중소기업 대표처럼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이런저런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하소연하는 경영자들을 많이 만난다. 왜 그럴까? 직원들의 변화에 대한 의지가 부족했던 걸까? 아니다. 교육을 통해 배운 것들이 습관으로 자리 잡지 않아서 직원들의 뇌에 과부하가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

회사는 교육을 통해 직원들이 변화에 관심을 갖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효과는 일시적일 뿐이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려는 인간 뇌의 특성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마치 회사의 예산처럼 쓸 수 있는 에너지 총량이 제한돼 있다. 특히 뇌에서 의지력과 같이 의식적 활동을 담당하는 부분은 배외측전전두엽인데, 이 부분을 활성화시키는 데 뇌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다시 말해, 직원들 개개인이 의지를 발휘해 행동을 바꾸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회사에서 직원들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업무는 조직 문화 개선뿐만이 아니다. 당장 매출 실적을 달성하고 고객을 유지하고 발굴하는 등 무수히 많은 현업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뇌는 제한된 에너지를 당장 시급한 일에 쓰게 된다. 그러다보니 소통과 협력에 필요한 직원들의 의지력은 약해지고, 결국 조직문화 변화 작업도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행동이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 뇌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우리 뇌에서 기술과 습관을 기억하는 부분은 선조체인데, 이 선조체에서 어떤 행동을 실행할 때는 배외측전전두엽과 달리 의식적 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를 덜 소모한다. 직원들의 행동을 특정 방식으로 변화시키려면 그런 행동을 습관으로 만드는 게 중요한 이유다.

즉, 기업이 조직 문화를 바꾸려고 교육하고 구성원들의 의지에 호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보다는 구성원이 평소에 에너지를 조직 문화 개선에도 자연스럽게 배분할 수 있도록, 즉 바람직한 행동을 습관처럼 반복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이다.

예컨대 아이가 책을 많이 읽게 하려면 다음 중에서 어디 근처에 사는 게 더 유리할까? 공동묘지? 시장? 서당? 공동묘지나 시장보다는 서당이 나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이야기다. 맹자의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하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보여줬다. 물론 아이는 곡소리가 들리는 공동묘지 근처에서도, 시끄러운 시장 안에서도 공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데서 공부하려면 아이의 뇌는 의식적으로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될 것이다.

기업이 진정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면 그런 필요성을 강조만 하지 말고 실제로 직원들이 평소에 소통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어떨까. 예컨대, 미국 아마존은 직원들에게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대신 멘토링 프로그램을 구축해 사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사내 누구나 멘토 혹은 멘티로 등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서로 원하는 지식과 기술을 나눌 수 있도록 독려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소통이 습관처럼 반복되게 되면 자연스럽게 직원 간의 유대감도 커질 것이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주변 환경을 통해 본 대로 행동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뇌의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은행 창구 앞이 혼란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은행 직원들이 질서를 지키자고 아무리 호소해도 별 효과가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혼란스러움이 사라졌다. 어떤 순간이었을까? 그렇다. 번호표를 뽑게 한 후부터였다.

이 원고는 DBR(동아비즈니스리뷰) 6월 첫 호(298호)에 게재된 ‘조직문화 혁신? 성급함 먼저 버려라’원고를 요약한 것입니다.

이수민 SM&J PARTNERS 대표 sumin@smnjpartners.com
#기업 컨설팅#조직문화#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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