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호 인디언[횡설수설/안영배]

안영배 논설위원 입력 2020-05-19 03:00수정 2020-05-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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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붉은 구름(Camp Red Cloud).’ 지금은 평택으로 이전한 주한 미2사단 사령부가 있었던 경기 의정부시의 기지다. 6·25전쟁에 참전한 인디언 용사 미첼 레드클라우드 상병의 살신성인을 기려 기지명을 지었다. 레드클라우드 상병은 북아메리카 인디언 역사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꼽히는 ‘붉은 구름’을 성(姓)으로 삼은 인디언 핏줄이다. 그는 1950년 11월 5일 중공군의 야간 기습으로 총상을 입은 상태에서 아군을 보호하기 위해 서 있기조차 힘든 몸을 나무에 밧줄로 묶고 자동소총으로 방어를 했다. 이튿날 온몸이 벌집처럼 변한 그의 시신이 발견됐다.

▷북아메리카 인디언 종족 중 가장 많은 인구(9만 명 추산)를 차지하는 나바호족은 6·25전쟁 당시 약 800명이 참전했고, 이 가운데 130여 명이 90대 고령으로 생존해 있다. 나바호족은 1940년대 태평양전쟁 때는 부족 언어인 나바호어로 일본군이 해독 불가능한 암호를 개발하는 등 암호통신병으로도 맹활약했다. 이들의 영웅담은 우위썬(吳宇森) 감독, 니컬러스 케이지 주연의 ‘윈드토커’(2002년)로 영화화됐다.

▷나바호족은 미국 남서부 애리조나, 뉴멕시코, 유타주에 걸쳐 있는 나바호 네이션(보호구역 내 자치정부)에 주로 살고 있다. 짐승들도 생존을 버거워하는 황무지다. 그런데 이런 황량한 사막도 코로나19는 비켜 가지 않았다. ‘미국인디언건강서비스’에 따르면 16일 현재 나바호 인디언 4172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열악한 위생 환경으로 인해 확진자율이 애리조나주의 9배가 넘는다고 한다.


▷국가보훈처와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는 나바호족에게 마스크(KF94) 1만 장과 손소독제 등 방역 물품을 긴급 지원키로 했다. 정부는 나바호족 외에도 16개 참전국에 우선적으로 방역 물품을 지원할 방침이다. 필리핀은 17일 현재 확진자가 1만2000여 명에 달하고, 콜롬비아 역시 코로나 환자가 사망하면 관으로 사용할 ‘종이 침대’까지 제작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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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호족은 보호구역을 찾는 한국인들에게 유달리 깊은 친근감을 표시한다고 한다. 인디언 선교 활동을 해온 이남종 선교사는 “나바호족은 한국인을 신발 두 짝 가운데 서로 한 짝(one pair of shoes)이라는 뜻의 ‘시끼스’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70년 전 참전국 젊은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이 방역 모범국 평가를 받는 위치까지 성장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낯선 나라에 와서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피를 흘린 이들에 대한 작은 보은이 그들이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데 작은 힘이나마 되기를 기원해 본다.
 
안영배 논설위원 ojong@donga.com

#나바호 인디언#시끼스#6·25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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