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24國서 종군기자… 2차대전때의 절반”

서귀포=조종엽 기자 입력 2020-05-16 03:00수정 2020-05-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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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클럽 ‘6·25와 한국 언론’ 세미나
238명 한국전선서 취재 경쟁
비공식 집계론 600명 이르러
18명 희생 당해… 10명이 美기자
관훈클럽이 제주 서귀포시 KAL호텔에서 15일 개최한 ‘6·25와 한국 언론’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선영 성공회대 교수, 권재현 동아일보 부장,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 박정훈 조선일보 논설위원실장, 윤상길 신한대 교수, 배영대 중앙일보 근현대사연구소장. 서귀포=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950년 9월 말 6·25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세계 24개국에서 238명의 종군 특파원이 한국 전선에서 취재에 열을 올렸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원됐던 기자들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였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15일 제주 서귀포시 KAL호텔에서 열린 ‘6·25와 한국 언론’ 세미나에서 ‘6·25전쟁과 언론’ 주제 발표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정 교수는 “일시에 이렇게 많은 기자가 특정한 지역에 동원된 것은 당시까지 2차 대전뿐이었다”며 “비공식적 집계에 의하면 6·25전쟁을 취재했던 해외 기자는 약 600명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는 관훈클럽(총무 박정훈 조선일보 논설위원실장)이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개최했다.

발표에 따르면 전쟁을 취재하던 기자 18명이 희생됐고 그중 미국 기자는 10명이었다. 8명은 총탄에 숨졌고 2명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언론사들은 부산을 비롯해 피란지를 옮겨 다니며 신문을 발간했지만 시설과 인적 손실이 막심했다. 동아일보 역시 장인갑 편집국장과 백운선 사진부장, 이길용 체육전문기자 등 약 16명이 북으로 끌려갔다. 1950년 10월 4일 서울에서 속간호를 내면서 “행방을 알 수 없는 사원들의 가족은 본사로 연락해주길 바란다”는 사고를 게재했을 정도였다. 정 교수는 “전쟁 중 납북된 언론인은 KBS 28명을 비롯해 모두 285명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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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남침 전부터 1950년 6월 내내 문인들을 동원해 ‘평화적 조국통일 실현’을 강조하는 글을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과 내각 기관지인 ‘민주조선’에 게재하면서 대남 선전을 강화했다. 사전 준비를 바탕으로 서울을 점령한 지 불과 나흘 뒤인 7월 2일부터 ‘해방일보’와 ‘조선인민보’를 발행해 통치 수단으로 활용했다고 정 교수는 밝혔다.

윤상길 신한대 미디어언론학과 교수는 ‘냉전의 언론, 언론의 냉전’에서 오보의 남발을 지적했다. 윤 교수는 “군이 제공한 전황 정보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오보도 매우 많았다”고 말했다.

서귀포=조종엽 기자 jjj@donga.com
#6·25전쟁#종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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