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 자라는 허브[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74〉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입력 2020-05-11 03:00수정 2020-05-1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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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텃밭에서 아스파라거스 두 쪽을 잘라 온 아내는 올해 첫 수확이라며 웃는다. 아스파라거스 봉오리가 흙을 차고 올라오면 봄의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하루 5∼10cm 정도는 쉽게 커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듯 놀란다. 아스파라거스와는 너무나 다른 성질을 가진 바질은 참으로 신경이 많이 쓰이는 허브다. 해마다 4월 초가 되면 바질 모종을 주문해 심는데 올해는 날씨의 변화가 심해 모종 하나하나에 비닐을 씌워줄 정도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갑자기 떨어진 온도에 몇 번 시달리더니 3분의 1 정도가 쪼그라져 오늘 오후 다시 모종을 구하러 시장에 갈 예정이다.

지금 우리 텃밭은 작년에 떨어진 씨로 여기저기 자란 루콜라가 한창이다. 흔히 보는 재배종(Arugula Coltivata)과 야생종(Arugula Selvatica)으로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더 크게 번식하는 야생종은 향과 매콤한 맛이 강해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는 일반 루콜라와는 비교될 수 없다. 샐러드나 모차렐라 치즈, 토마토와 함께 곁들이거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피자, 파스타와 곁들이기도 한다. 크림색 꽃이 벌들을 유혹할 만큼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민트와 한국토종 박하도 한자리 차지하고 잘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잡초과 식물로 신경 쓰지 않아도 너무 잘 사는 허브로 해마다 더 넓게 번식해 선을 그어 정리를 해 줘야 할 정도다.

내가 한국에 와서 텃밭을 시작한 지도 15년이 됐다. 서양 요리를 가르치며 비싸고 구하기 힘든 허브가 필요한 것도 이유였지만, 농부의 입장이 되어 봐야만 좋은 요리사가 될 수 있다는 나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타임과 로즈메리, 세이지, 오레가노, 월계수나무, 산초, 방아, 보리지, 시소와 깻잎, 겨자, 방풍, 소렐…. 전 세계 어디를 여행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방문지는 재래시장이다. 그 나라의 먹거리를 구경하는 것도 신나지만 꽃가게에 들러 꽃구경을 하고 씨를 구입해 온다. 파종을 한 후 꽃이 피고 다시 씨를 받을 때까지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내가 사는 북촌한옥마을은 코로나19 이전에는 매일 관광객이 북적였다. 텃밭은 관광지 길가에 자리하고 있는데 담배꽁초와 쓰레기, 특히 겨울에는 주민들의 음식물쓰레기로 몸살을 앓았다. 첫 2, 3년 딱딱한 흙이 대부분이었던 밭에 부드러운 흙과 유기농 퇴비를 섞어 밭을 일구었고 퇴비 냄새를 줄이기 위해 주기적으로 원두커피 찌꺼기도 뿌린다.
동네 할머니가 갖다 버린 호박씨와 참외씨가 가을이 되어 열매가 달리자, 자기가 씨를 뿌렸으니 본인 것이라 주장을 한다. 수년 동안 고이 기른 로즈메리를 며칠 전 머리 자르듯 싹둑 잘라 가는 얌체족도 있었지만 나는 이것을 이 동네에 바치는 세금이라 생각한다. 유독 노년층이 많은 동네이고 대부분의 주민이 40, 50년 이상 한옥마을에서 살고 있다. 동네 할머니들은 뭔지 모르는 신기한 꽃들이 이제는 익숙해진 듯 행복해한다. 봄이 와 밭일을 시작할 때쯤이면 꽃만 심지 말고 먹을 것도 키우라고 오며가며 조언도 한다. 그렇게 북촌의 봄날은 오고 또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듯.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허브#북촌한옥마을#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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