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쓰는 법]“‘아파트 숲’ 서울도 낭만이 될 수 있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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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서울엔’ 저자 황진태

서울을 고향이라 부를 수 있을까. 1960, 70년대 이촌향도(離村向都)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상경한 부모를 둔 서울 아이들에게 고향이란 대개 아빠, 혹은 엄마의 고향이었다. 1980년대 이후 서울 출생자들에게는 좀 다른 것 같다.

1982년생 싱어송라이터 검정치마는 ‘내 고향 서울엔’이라는 노래를 불렀고 동갑인 지리학자 황진태 박사(사진)는 같은 이름의 책(돌베개)을 냈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점점 남하(南下)하는 저자의 동선에 따라 종로, 신촌과 홍대, 영등포와 구로 그리고 강남에 얽힌 ‘자잘한’ 기억을 영화 노래 같은 대중문화에 버무린 글들을 모았다.

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황 박사는 “아파트 숲이 고향일 수 있겠느냐는 곳이 서울인데 (30년간 살아온 오래된 아파트를 책과 영화로 기록한) 둔촌동 주공아파트처럼 기억들이 쌓여서 (고향이라는) 지층이 되고 있다”고 했다.

기억을 이야기하는 게 ‘라떼(나 때는 말이야)’나 싸구려 낭만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저자는 낭만을 전략적으로 밀어붙였다.

“틈새공간으로서 자잘한 기억을 말하고 나열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 아래 세대나 위 세대도 자신의 장소에 얽힌 기억들을 얘기하는 여지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었다.” 장소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의 공유가 세대 간 소통과 연대의 마중물일 수 있다는 얘기다.

“밤에 을지로 ‘만선호프’가 있는 골목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을 보며 영화 ‘월드 워 Z’의 몰려드는 좀비들이 떠올랐다. 그 공간의 활력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들이 근대화 과정의 제조업 생산도시였던 그곳의 ‘역사’를 기억할까요.”

지금이 ‘미친 세상’일 수 있는 젊은이들이 그냥 피해자로, 종속된 것으로, 막막하게 고립되지 말고 다른 이와의 연대를 고민할 수 있는 완충지대로서 이 책이 읽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을지로 가봤어?” 하면 세대에 따라 그곳에 대한 서로만의 기억을 갖고 있다. 다르다고 하더라도 작은 기억의 공론장이 만들어진다면 변화를 모색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글들이 마냥 사적인 옛날이야기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서울의 지역과 지역 사이에 만들어진 정치경제적, 계층적 갈등과 애증이 문장 사이사이 배어 있다. 그래도 그의 바람은 재미있게 읽히는 것이다.

“낭만이니까요, 그냥 재미있게 하하하. 서울을 얘기하는 장을 하나 만들었으니 앞으로 다양한 의제들을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다양한 버전의 ‘내 고향 서울’이 나올 것 같은데요. 정치적인 에세이일 수도 있고요.”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내 고향 서울엔#저자 황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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