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 만의 미투’…70대 여성 “성폭력 정당방위 인정하라” 재심 청구

  • 뉴스1
  • 입력 2020년 5월 6일 15시 33분


코멘트
56년 전 성폭력을 시도하는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가 실형을 선고 받은 A씨(74)가 6일 부산지방법원에 재심 신청서를 제출했다. 부산여성의전화 등 353개 여성단체와 A씨 변호인단은 이날 부산지법 앞에서 A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정당방위와 무죄를 인정해달라“고 촉구했다. A씨는 당시 법원으로부터 중상해죄 혐의가 인정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2020.5.6/뉴스1 © News1
56년 전 성폭력을 시도하는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가 실형을 선고 받은 A씨(74)가 6일 부산지방법원에 재심 신청서를 제출했다. 부산여성의전화 등 353개 여성단체와 A씨 변호인단은 이날 부산지법 앞에서 A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정당방위와 무죄를 인정해달라“고 촉구했다. A씨는 당시 법원으로부터 중상해죄 혐의가 인정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2020.5.6/뉴스1 © News1
1964년 성폭력에 저항하다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폭행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여성이 56년 만에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부산여성의전화 등 총 384개 단체로 구성된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여성·시민 사회는 6일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서를 접수한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70대 여성인 A씨는 56년 전인 1964년5월 자신을 강간하려는 가해자에게 저항하다 가해자의 혀에 상해를 입히게 됐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은 조사를 받으러 온 A씨를 구속했고,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길을 안내한 A씨의 행동이 성폭력을 시도하게 된 원인이 됐을 것이라며 A씨에게 ‘도의적 책임’을 물었다.

결국 미수로 그친 성폭력 범죄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A씨는 중상해죄가 인정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2018년 A씨는 사회적으로 대두됐던 ‘미투’운동을 접한 뒤 한국여성의전화에 도움을 요청했고, 여러 단체들의 도움을 통해 이날 재심을 청구하게 됐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A씨가 처음 우리를 찾아오셨을 때 오래전 일이지만 무죄를 인정받고 싶다.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시원하고 용기가 생긴다는 말을 했다”며 “긴 세월 동안 A씨가 겪었을 고통과 상처를 생각하면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나의 용기로 사회가 변했으면 좋겠다는 A씨의 말씀에 우리는 고통과 분노를 넘어 여성의 힘과 연대감, 그리고 용기를 느꼈다”며 “여성의 방어권이 이사건을 계기로 제대로 인정 받을 수 있게됐다는 판례를 만들기 위해 A씨와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사건을 맡은 김수정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피해자의 진술에 따르면 수사과정에서의 위법성이 확인됐다”며 “경찰에서 정당방위로 인정해 무혐의로 송치한 사건을 검찰이 뒤집었고,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로 온 A씨를 구속한 채 진술 거부권을 고지하지 않고 고의로 혀를 자른 것 아니냐며 자백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체포와 불리한 진술을 강요한 행위는 충분히 재심사유가 된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또 “법원 역시 A씨에게 행실의 책임을 묻는 가해자의 범죄행위를 A씨에게 전가하는 등 2차 가해를 했다”며 “A씨가 침해받은 법익에 대해서도 여성 성적 자기결정권과 자기처분권이라는 인권과 신체 안전이 아닌 정조로 보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법원에서 언급되고 있는 성인지 감수성은 시대 변화에 따라 대두된 새로운 가치가 아닌 보편적 가치”라며 “그러나 A씨는 사법 절차 상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가해자로 몰려 범죄 유발 책임까지 받게 됐다. 지금이라도 법원이 나서서 A씨의 억울함 풀줘야 한다”고 밝혔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 피해자인 김지은씨도 이날 지지선언문을 통해 “가해자와 공권력, 그리고 사회로부터 모진 고통을 받은 후 56년간 억울함을 안고 살아왔을 선생께 어떤 위로의 말을 드릴 수 있겠느냐”며 “그저 선생님의 용기와 강인함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고통 속에 사셨을 선생님의 곁에는 지금 많은 분들이 함께 있다”며 “저 역시 선생님의 상처가 치료되고 한이 풀리는 길에 옆에 서서 함께 싸우겠다”고 말했다.

A씨는 “저는 너무 억울해서 이자리에 56년 만에 서게 됐다”며 “그런데 56년이 지난 현재도 미투 사건이 여러가지 나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사법부와 법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 후세까지 연결된다는 점을 너무 절박하게 생각해서 이자리까지 왔다”며 “이런 점을 고려해서 사법이 분명히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5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56년만의 미투, 재심으로 정의를!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국민 청원글은 6일 오후 3시 기준 5982명의 동의를 받았다.

(부산=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