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후회’가 진솔한 소통을 막는다[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입력 2020-05-05 03:00수정 2020-05-05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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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이상하게 꽉 막힌 ‘공부 대화’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수학이 너무 어려워서 공부를 해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엄마한테 그렇게 말해봤니?”라고 물었더니, 아이는 “말하면 저만 힘들어져요”라고 했다. 엄마는 바로 “그럼 학원 하나 더 다닐래?”라고 말하기 때문이란다. 부모에게 공부에 대해 말하면 자기 짐만 늘어난다고 했다. 왜 힘든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는 들어보려 하지 않고 바로 학원이나 과외가 해결책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시험을 못 봐서 속상하다고 해도 마음을 알아주기보다 학원 하나 늘리자고 하거나 더 열심히 하라는 말만 한단다.

많은 부모들이 그렇다. 어떤 부모는 어려움을 상담하는 아이를 혼내고 비난한다. “다른 애들은 잘만 하는데, 왜 너만 못해? 네가 열심히 안 하니까 그렇지.” 대화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아이들은 공부의 어려움에 대해 부모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공부에 있어서 아이들의 상황은 항상 사면초가다.

부모도 자신들이 어렸을 적보다 요즘 아이들이 공부할 것이 많고 경쟁도 치열하고, 잘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안다. 아이가 안쓰럽다는 생각도 한다. 지금 안 태어나고 옛날에 태어나서 학교 다니길 잘했다는 생각도 있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 안 한다. 공부 때문에 괴로워 죽겠는 아이에게 더한 공포감을 심어준다. “너 이렇게 공부해서 세상을 어떻게 살려고 그러니?” “너 나중에 거지 된다.” “너 이따위로 할 거면 그만둬.” 실제로 서울역 노숙자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부모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공부 때문에 아이가 미워지는 것은 아이의 점수나 성적이 낮기 때문이 아니란다. 대부분 공부를 다루는 아이의 태도나 자세에 화가 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는 부모는 드물다. 꼭 점수나 성적을 가지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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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빠는 공부를 열심히 안 하는 아이를 보면서 어린 시절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던 자신의 아픔이 떠오르고, 자식에게만큼은 최선을 다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커지지만 그럼에도 아이가 열심히 하지 않을 때 좌절감을 느꼈다. 만약 아이에게 그런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말하면서 공부하라고 했다면 아이에게 조금은 먹혔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이 있으면서 말은 “네가 의대를 가겠다고? 그렇게 하면서 퍽이나 가겠다”라고 하고 만다.

소통의 기본은 진솔함이다. 부모들은 아이의 공부 앞에서 왜 이렇게 이상스럽게 소통을 하는 걸까? 아이가 공부를 다루는 자세와 태도를 보면서 자기 안에 너무나 많은 감정적인 것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부모들 마음 안에는 아이가 공부를 중도에 포기하거나 실패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직업을 제대로 구하지 못해 먹고살기 힘들 거라 생각한다. 또한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삶의 코스가 고등학교 내지 대학교라고 생각한다. 거기서 뭔가 낙오되거나 뒤처지는 것이 너무 걱정스러워 용납이 안 된다.

또한 뒤늦게 자신이 그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가 초등기가 되면 부모의 나이가 대개 30대나 40대 초반이다. 이때 부모들은 자신의 공부를 후회한다.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도 후회하고,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도 후회하고, 안 한 사람은 더 많이 후회한다. 사실 더 오래 살아보면 그게 전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나이 부모는 아이한테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려고 자꾸만 다그치게 된다.

아이의 공부 앞에서 부모의 마음에는 자신의 불편한 감정이 너무 많다. 그 감정을 인식하고 다루면 괴로우니까 그냥 혼을 내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아이의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모의 공부에 대한 함축적이고 왜곡된 의사소통 때문에 아이가 공부를 오해하고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우선 부모 자신이 공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그런 다음, 그것을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느끼는 공부에 대한 어려움도 덜어줄 수 있고, 아이 안에 있는 복잡한 감정들이 아이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공부 대화#진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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