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자, 보시오! 이 분들이 3·1운동 지도자들이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4일 1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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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0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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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20년 7월 12일자 3면은 ‘읽는’ 신문이 아니라 ‘보는’ 신문이었습니다. 전체 지면의 3분의 2를 얼굴사진이 빼곡하게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로 9단짜기를 시도해 위에서 여섯 번째 단까지는 보는 사진을 배치하고 그 밑에 3단에 읽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아주 파격적이고 대담한 편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지면은 3·1운동 지도자들의 재판이 시작되는 날을 맞아 지도자 48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사진을 담았습니다.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년 넘게 지났지만 많은 조선인들은 48인이 누구인지 잘 몰랐습니다. 독립선언서에 33인이 서명했다더라, 예심결정서에는 3·1운동을 사전에 기획하거나 학생들을 이끌었던 지도자가 15인이나 된다더라, 정도만 알았죠.

당시는 지금처럼 TV도, 스마트폰도 없었고 기념사진도 아주 드문데다 스냅사진은 이제 막 등장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가족과 친지, 선후배 등을 제외하고 이 지도자들의 얼굴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죠. 그래서 당시 동아일보 편집자들은 조선인들의 답답함을 풀어주기 위해 이렇게 혁신적인 지면을 구상했습니다. 글자만 실을 때는 지면이 세로 12단짜기였지만 사진을 싣게 되면서 9단짜기를 과감하게 적용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죠.

기자들이 48인의 사진을 하나하나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법합니다. 두루마기 입은 사람부터 양복에 넥타이 차림인 사람, 갓 쓴 사람에, 학사모 쓴 사람까지 제각각인 모습이 사진이 귀하던 100년 전의 실정을 잘 말해줍니다. 이 지면에 실을 사진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여 얼마나 먼 길을 오갔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진은 1920년 4월 6일자에 실렸던 예심결정서의 이름순으로 배치했습니다. 오른쪽 맨 위 손병희를 시작으로 왼쪽으로 이어지는 순서입니다. 한 단씩 아래로 내려와 같은 순서로 실었죠. 사진 아래 2단 크기 기사로 이름을 별도로 추가했지만 일일이 대조해서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참고하시라고 사진마다 직접 이름을 넣은 사진을 첨부했습니다.

그런데 ‘옥에 티’라고나 할까요? 48인 얼굴사진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이중 한용운 사진이 가짜였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얻으려고 동분서주하던 스물두 살 청년기자 유광렬은 한용운 사진 한 장을 끝까지 구하지 못했습니다. 한용운은 독립운동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여겼는지 사진 찍는 일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진 구하기가 더 힘들었겠죠.

쩔쩔매던 유광렬이 보기 딱했던지 학예·미술 담당기자 고희동이 사진 하나를 슬쩍 건네줍니다. 고희동은 5년 과정의 도쿄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한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였습니다. 반색하며 ‘한용운 사진이냐’고 유광렬이 묻는 말에 고희동은 그저 웃기만 했다죠.

(왼쪽) 1920년 7월 12일 3면의 한용운 사진 (오른쪽) 1920년 서대문감옥에 갇힌 한용운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왼쪽) 1920년 7월 12일 3면의 한용운 사진
(오른쪽) 1920년 서대문감옥에 갇힌 한용운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이렇게 해서 지면에 실은 사진 속 한용운과 실제 한용운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다릅니다. 지면 속 사진과 서대문감옥에서 찍은 한용운 사진을 비교하면 차이를 알 수 있죠. 화가인 고희동이 비슷한 윤곽의 사진을 골라 손질까지 했으니까 아주 딴판은 아니었을 겁니다. 유광렬 본인은 그로부터 50년 가까이 흐른 1969년에 “그때 신문의 한용운 사진은 가짜였다”라고 고백합니다. 자서전 ‘기자 반세기’에서 털어놓은 것이죠.

48인 얼굴사진 아래에 실린 ‘금일이 대공판’ 기사는 역사적인 의미에 비춰볼 때 길지는 않습니다. 3·1운동 후 붙잡힌 48인이 서대문감옥에서 모진 더위와 추위를 겪은 지 16개월 12일 만에 드디어 재판이 열려 그 결과가 주목된다는 내용입니다.

다만 4개 경찰서에서 동원한 일제 경찰 100여 명이 법정을 철통같이 둘러싸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는 대목이 눈길을 끕니다. 또 손병희가 뇌출혈 후유증이 심해 법정에는 나오지 못한다는 내용은 별도 제목을 붙여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했습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과거 기사의 원문과 현대문은 '동아플래시100' 사이트(https://www.donga.com/news/donga100)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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