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목장터에 세운 ‘영재교육의 판타지’ 존폐 기로에 서다[논설위원 현장 칼럼]

횡성=구자룡 논설위원 입력 2020-03-04 03:00수정 2020-03-04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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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위기 맞은 민족사관고
전통 기와지붕을 한 민사고 건물이 강원 횡성군 덕고산 산자락에 올망졸망 자리하고 있다. 왼쪽 2층 건물은 다산관(자연계)과 충무관(인문계) 강의동이고 오른쪽이 민족교육관, 뒤쪽 높은 건물은 기숙사. 횡성=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구자룡 논설위원
강원 횡성군 안흥면 덕고산 자락에 있는 민족사관고의 ‘민족교육관’은 국어 음악 서예 분야 캠퍼스다. 묵향당(墨香堂) 함영당(함英堂) 풍월당(風月堂) 등의 이름이 붙은 1층 기와지붕 한옥 몇 채가 모여 있어 조선시대 향교 같은 분위기다. 섬돌에 신발을 벗고 삐걱 소리가 나게 문고리를 당겨 들어가니 한쪽 벽 가득 책이 꽂혀 있다. 한 국어 교사의 연구실 겸 교실로 쓰는 이곳에 동그란 책상 3개가 올망졸망 놓여 있다. ‘문학 창작과 수용’을 수강하는 학생 4, 5명이 두툼한 책과 컴퓨터를 들고 들어왔다. 코로나19로 휴업하기 전 지난달 찾아가 본 민사고의 한 수업 장면이다.

교육부가 1일부터 일부 마이스터고에서 시범 시행에 들어간 고교학점제, 그리고 앞으로 도입을 검토 중인 ‘교과교실제’를 민사고는 1996년 설립 이래 오래전부터 해왔다. 학생이 수강 과목 교실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미국 영국 등 명문대 합격생을 수백 명 배출한 것도 이런 창의성 교육에서 나왔다.

교육부는 민사고를 비롯한 자율형사립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며 그 이유 중 하나로 ‘다양한 인재 양성에 미흡하다’는 점을 들었는데, 민사고 교육 현장에서 그런 교육부 논리를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자사고 설립 근거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관련 조항이 지난해 11월 교육부 조치로 삭제된 뒤 지난달 25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사흘 후 전격 공포됐다. 이제 정부가 방향을 선회하지 않는 한 2025년 3월 1일 민사고는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 민사고 개교 30년을 맞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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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고로 전환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겁니다.” 학교에서 만난 한만위 교장은 민사고가 일반고로 전환할 수 없어 폐교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짚었다. 먼저 민사고가 설립 허가를 받을 때 ‘전국 모집’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강원도는 이미 학생 수가 부족해 기존 학교도 줄여야 할 형편이었다. 일반고로 전환해 한 해 150여 명의 입학생을 강원도에서만 모집하는 건 다른 학교에도 피해를 주는 일이다.

교사 자격증이 없어도 강의했던 석·박사 학위를 가진 선생님들은 일반고로 전환되면 수업을 할 수 없고 급여를 올려서 붙잡을 수도 없다. 교사 한 명당 학생 6.4명으로 이뤄지던 차별성 있는 교육도 없어진다. 더욱이 강원 원주에서만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이곳에 비싼 기숙사비를 내면서 오려는 학생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2004년 민사고와 상산고, 해운대고 등 6개가 시범학교로 지정된 뒤 자사고는 46곳이 됐다. 다른 학교들은 일반고에서 자사고로 전환됐지만 민사고만은 자사고 제도가 생기기 전부터 전국 단위 모집 등 ‘태생이 자사고’였다. 다른 학교는 자사고가 폐지되면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일반 학교로 돌아간다지만 민사고는 돌아갈 곳이 없다. 한 교장은 “무엇보다 법인은 ‘민족정신으로 무장한 세계적 지도자 양성’이란 설립 이념을 추구하지 못하는 학교를 운영할 뜻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걸리는 민사고는 최명재 전 파스퇴르 회장이 학교 설립 자금을 마련하겠다며 횡성에 조성한 옛 성진목장 터에 세워졌다. 파스퇴르우유 공장과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다. 오래전 롯데푸드에 매각된 우유 공장 구내를 지나면 다산 정약용과 충무공 이순신의 동상이 좌우 기둥에 세워진 학교 정문이 나온다.

학교 진입로에 들어서면 오른쪽 화단에 ‘본교 출신 노벨상 수상자의 동상’이라는 글씨가 앞면에 새겨진 15개의 화강암 좌대가 줄지어 있다. 세계적인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학교의 꿈을 대변한다. 다산관(자연계 강의실)과 충무관(인문계 강의실) 샛길에는 수학경시대회 등 각종 세계 대회에서 수상한 학생들의 이름과 수상 기록 등이 돌에 새겨져 전시돼 있다. 노벨상 좌대에 올라갈 예비 후보들인가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다.

최 전 회장은 영국의 이튼스쿨을 방문했을 때 마침 이 학교 출신인 넬슨 제독의 전승기념식이 열리는 것을 보고 “한국에는 넬슨보다 훌륭한 이순신 장군이 있는데, 이튼 같은 학교가 없다”고 느껴 민사고를 설립했다고 한다.

설립자의 뜻은 개교일을 3월 1일로 잡아 3·1만세운동을 잊지 않게 하는 것에도 담겨 있다. 학교 헌장에 내건 두 가지 교육 목표 중 민족 주체성 교육이 처음이고 그 다음이 영재 교육이다. 강의실이나 사무실에는 어디에나 태극기와 ‘祖國(조국)’ 두 글자가 걸려 있다.

‘전국 각 학교 상위 1%, 입학생 30명, 전원 장학금과 기숙사 생활, 한복 교복을 입고 영어로 수업, 국궁과 가야금을 배우는 전인격 교육.’

민사고가 문을 열 때 마치 ‘꿈의 학교’처럼 보였다. 하지만 1기생 30명 중 19명이 2학년에 오르기 전 그만뒀다. 내신이 불리하고 교과 과정이 ‘서울대 가기 어렵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최명재 당시 법인 이사장은 “서울대 가려거든 오지 말라”고도 했다. 하지만 학생이 오지 않는 학교는 존립할 수 없었다. 이창규 사무국장은 “점차 국내 대학 입시도 무시할 수 없었다”고 했다.

2019년까지 하버드대 12명, 예일대 17명, 프린스턴대 22명, 옥스퍼드대 30명 등 901명이 해외 유명 대학에 진학했다. 졸업생 2347명의 38%다. 홈페이지에는 국내외 수학 물리 환경 천문 등 각종 이공계 대회 수상자 133명이 소개돼 있다. 국내 대학 진학자도 점차 늘어 지난해에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입학이 62명으로 졸업생의 42%였다. 한때 학원에 민사고 대비반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교육부가 ‘자사고 설립 취지와 달리 입시 위주 교육으로 고교 서열화를 유발했다’고 지적하는 대목이다.

한만위 교장이 이 학교 출신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면 동상을 세우기 위해 정문 진입로에 설치돼 있는 화강암 좌대를 설명하고 있다. 횡성=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별종’ 민사고는 세계를 무대로 한 인재만 키울 수도, 그렇다고 국내 대학 입시에 주력하기도 힘든 정체성의 혼돈 속에 ‘일반고 전환’이라는 낭떠러지를 만났다.

최 전 회장이 ‘저온 살균’ 논란과 파동 속에 파스퇴르유업에서 번 돈과 사재 등 1000억 원가량을 투자해 세운 민사고는 곡절도 많았다. 개교 이듬해 외환위기가 터져 1998년 1월 파스퇴르가 부도났다. 2004년 파스퇴르가 매각되면서 학교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민사고는 학생 수를 늘리고 ‘수익자 부담’ 원칙으로 학비를 받아 자립에 나섰다.

최 전 회장은 2000년 7월 휴가차 내려간 제주도의 한 호텔 사우나에서 뜨거운 물에 풍덩 뛰어들어 85% 화상을 입었다. 수개월간 사경을 헤매다 그해 말 다시 학교로 돌아와 학생 기숙사에 머물며 학교를 지켰다.

2002년 2월 ‘4대 교장’에 올라 1년간 재직하면서 평생 숙원인 ‘교장 선생님’이란 꿈도 이뤘다. 최 전 회장의 장남인 최경종 학교 행정실장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교장 임명장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사립학교 교장은 법인 이사장이 임명하는 것이지만 축하의 뜻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됐다.

민사고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2012년 전 세계 유명 고교 모임인 ‘G20 하이스쿨’(현 G30 하이스쿨)에도 초대돼 가입했다. 현재 미국의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 하버드 웨스트레이크 스쿨, 영국의 이튼 칼리지, 웰링턴 칼리지 등 20개국 50곳가량이 회원 학교다.

화상 후유증 등으로 쇠약해진 최 전 회장은 2016년 2월 개교 20주년 행사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것이 마지막 외부 활동으로 알려졌다. 최 전 회장은 현재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지난해 일반고 일괄 전환 결정으로 민사고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소식은 알지 못한다고 최 실장은 전했다.

교육부의 시행령 개정으로 일반고로 전환해야 하는 고교는 자사고 46곳을 포함해 외국어고 국제고 등 79곳이다. 이들 학교의 교장연합 대표를 맡고 있는 한만위 교장은 교육부 조치에 대해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다. 최 실장은 “끝내 일반고로 전환하게 되면 폐교하기 전 설립자가 처음 쓰려고 했던 ‘민족주체고’로 이름을 바꿔 문을 닫을 계획”이라고 했다.

최 전 회장은 ‘20년 후 너희들이 말하라’란 자서전에서 “민사고의 긴 역사에서 나의 역할은 우주 대기권 밖으로 우주선을 밀어 올리는 1단계 로켓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밝혔다. 민사고가 오래 유지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훗날 민사고 출신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도 수상자의 동상을 올려놓을 좌대가 있는 학교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 했을 것 같다.

민사고는 설립 때부터 횡성의 목장에 세운 판타지 같았다. 판타지는 이룰 수 없는 꿈이기도 하지만 민사고가 한때의 신기루처럼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파국의 시나리오다.
 
횡성=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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