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서 서식하던 멧돼지, 서울 도심 산까지 몰려온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31일 15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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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산지에 야생멧돼지 개체수가 급증하면서 시민과 등산객 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다. 2017년에는 종로구 평창동 주택가에서 300㎏짜리 멧돼지가, 올해 3월 도봉산 인근에서는 멧돼지 가족 5마리가 포획되기도 했다. 사진제공 야생생물관리협회
수도권 산지에 야생멧돼지 개체수가 급증하면서 시민과 등산객 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다. 2017년에는 종로구 평창동 주택가에서 300㎏짜리 멧돼지가, 올해 3월 도봉산 인근에서는 멧돼지 가족 5마리가 포획되기도 했다.
사진제공 야생생물관리협회

‘빠사삭! 쉬익!’

18일 오전 6시 평소처럼 서울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에서 종로구 평창동 방면으로 아침 산책을 즐기던 중이었다. 숲속에서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큰 굉음이 들렸다. 잠시 후 눈앞으로 큰 물체들이 잇따라 등산로를 가로질러 지나갔다. 덩치가 제법 큰 데다 거무튀튀한 모습에 위협감을 느꼈다. 야생 멧돼지 떼였다.

장정만 씨(61·사업)도 최근 북악산 백사실계곡을 걷다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와사삭!’ 하는 소리와 함께 큼지막한 멧돼지들이 숲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 그는 “급히 위쪽 계단으로 피하긴 했지만 자칫하면 공격을 당할 수도 있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최근 서울 북한산 북악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등에서 멧돼지 출현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산림지역 최상위 포식자로 자리 잡은 멧돼지 개체 수가 크게 늘면서 주민과 등산객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 멧돼지, 어디서 나타났나

멧돼지 가족 포획
멧돼지 가족 포획
최근 멧돼지 개체 수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증가하는 추세다. 수도권 지역의 멧돼지 포획 작업에 참여하는 민간 자원봉사단체인 ‘야생생물관리협회’의 이승용 서울지회장(64)은 “20년 전만 해도 수도권 지역 산에서 멧돼지를 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10년 전부터 개체 수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북한산 북악산 일대에 서식하는 멧돼지만 200마리 이상이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1990년대 수도권에서 포획된 멧돼지는 연간 20마리 수준에 불과했지만 10년 전부터 40마리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136마리에 달했다.

이처럼 멧돼지가 서울에서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호랑이 표범 등이 멸종된 뒤 최상위 포식자가 됐기 때문이다. 생후 1년이 지나면 적게는 3, 4마리에서 많게는 12마리까지 새끼를 낳는 뛰어난 번식력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1990년대 말부터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생태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생태통로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서울시내에 출몰하는 멧돼지 숫자 증가로 이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수도권 외곽 오지에 서식하던 멧돼지가 서울시내까지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멧돼지 이빨
멧돼지 이빨
멧돼지는 무엇이든 잘 먹는 잡식성 동물이다. 지렁이, 두더지는 물론이고 채소나 과일 등 농작물까지 먹어치우면서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됐다. 산림지역은 물론 도심의 텃밭까지 망가뜨리고 사람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에만 경남 합천 등에서 나무를 하거나 밭일을 하다 멧돼지가 들이받아 목숨을 잃은 사례가 4건이나 된다”며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멧돼지, 어떻게 잡나

야생생물관리협회 소속 회원 엽사는 30여 명으로 모두 총기류 사용 면허증을 갖고 있다. 각자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봉사활동으로 멧돼지 포획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엽사들은 지자체와 자치구에 등록하고 매년 초 포획 승인 허가도 받는다. 엽사들은 멧돼지 출현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서에 보관해둔 총기류를 찾아 경찰관들과 함께 출동한다.

멧돼지 포획 작업은 관할지역 자치구가 119나 112로 신고가 접수되면 엽사 단체들에 연락해 시작된다. 협회는 20일에도 ‘등산로에 멧돼지가 나타났다’ ‘북악산 밭을 파헤쳐 놨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 멧돼지 포획 작업에 착수했다. 이날 오전 8시 반경부터 엽사 7명은 사냥개와 함께 백사실계곡 인근을 뒤지기 시작했다. 발자국을 따라 숲속 이동로를 추적하던 엽사들의 귀에 멧돼지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포획 틀에 갇힌 멧돼지가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소리였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정신없이 걸음을 옮기던 엽사들 앞으로 잠시 후 ‘후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멧돼지 3마리가 스쳐 지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방아쇠를 당기지도 못했다. 멧돼지는 산속에서도 시속 35km로 달릴 정도로 빠르다. 또 이동거리도 하루 10km가 넘어 한 번 놓치면 잡기가 어렵다. 엽사들은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오후 내내 숲 곳곳을 뒤졌지만 사라진 멧돼지들은 찾지 못했다. 결국 경찰이 입회한 상태에서 포획 틀에 갇힌 멧돼지를 사살하는 것으로 이날 포획 작업은 끝나고 말았다.

멧돼지 잡은 이숭용 회장
멧돼지 잡은 이숭용 회장
20년 이상 엽사로 활동 중인 이 회장은 단독으로 포획 작업에 나서기도 한다. 27일에도 그랬다. 서울 노원구의 한 공원에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홀로 포획 작업을 펼쳐 몸무게 120kg짜리 멧돼지를 사살했다. 22일에도 노원구의 한 초등학교 앞 공원에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신고를 받고 단독으로 출동했지만 멧돼지가 인근 불암산으로 도주하는 바람에 포획에는 실패했다.

협회는 올해 3월 도봉구 도봉산 부근에서 멧돼지 어미와 새끼 등 5마리를 한꺼번에 포획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가족 단위로 움직이는 멧돼지의 습성을 파악해 이동로를 급습한 게 주효했다. 포획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일도 가끔씩 발생한다. 2017년 서울 종로구 평창동 주택가에서 300㎏짜리 멧돼지를 잡는 과정에서 사냥개 2마리가 목숨을 잃은 게 대표적이다.

멧돼지의 출몰이 잦아지면서 자치구들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종로구의 경우 평창동 구기동 백사실계곡 등 3곳에 멧돼지 포획 틀을 설치해 두고 있다. 종로구 녹지관리과 전승호 주무관은 “매년 멧돼지가 출현하는 지역이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 잡은 멧돼지, 어떻게 처리하나

사살된 멧돼지의 처리는 협회가 맡는다. 종로구 관계자는 “자치구와 경찰이 포획을 허가한 만큼 사살된 멧돼지의 처리는 협회에 일임한다”며 “다만 이를 가공 판매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협회는 일반적으로 잡은 멧돼지의 털과 내장 등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부위는 불에 태우고, 살코기는 협회 회원끼리 나눠 먹거나 경로당, 양로원에 기부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사살한 멧돼지의 피와 내장을 농림축산검역본부와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등에 보냈다. 멧돼지로부터 발병되는 것으로 알려진 돼지열병 관련 연구 자료로 사용하라는 취지였다.

엽사들은 사명감을 갖고 자원봉사 차원에서 멧돼지 포획 작업에 나서지만 서운함도 있다. 이 회장은 “사비를 들여 멧돼지 포획을 하는데 일부 주민들이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할 때는 힘이 빠진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자치구가 포획단에 재킷이나 운동화 같은 장비 정도는 지원해 주면 고맙겠다”고 덧붙였다.

멧돼지가 급증하면서 시민 안전을 위협하고 있지만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에서는 관련 법에 따라 총기류를 반입하거나 사용할 수 없다는 점도 보완해야 할 과제다. 이에 대해 북한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총기류는 (안전사고 등의 이유로) 반입을 금지할 수밖에 없다”며 “대신 포획 틀을 멧돼지 이동로 등에 배치해 포획하는 방법 등 다양한 대책 마련을 고민 중에 있다”고 말했다.


▼ 야생 멧돼지 대처법 ▼

① 멧돼지를 목격하면 조용히 큰 나무 뒤쪽으로 이동해 몸을 숨긴다
② 멧돼지에게 등을 보인 채 뛰지 않는다
③ 호루라기를 불거나 돌을 던지는 등 자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④ 등산로 외에 숲이 우거진 길로 들어가지 않는다(은신처 주의)
⑤ 야간에는 멧돼지가 이동하는 경우가 많으니 산행을 자제한다

▼ 정부가 지정한 유해동물 어떤게 있나? ▼

고라니
정부가 관리하는 유해야생동물로 멧돼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라니나 청설모 등 온순하게 보이는 동물도 포함된다. 사람에 대한 공격 외에 농작물 등에 대한 피해도 감안해 유해야생동물을 지정하기 때문이다.

● 참새 까치 비둘기도 유해야생동물

현행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부가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 야생동물은 포유류 6종, 조류 11종 등 모두 17종이다.

청설모
포유류에는 인가 주변에 출현해 사람이나 가축에게 위해를 주거나 위해 발생의 우려가 있는 멧돼지와 맹수류(멸종위기 야생동물은 제외), 일부 지역에 서식 밀도가 높아 농림수산업에 피해를 주는 고라니, 청설모, 두더지, 쥐류가 있다.

조류에는 장기간에 걸쳐 무리를 지어 농작물 또는 과수에 피해를 주는 참새, 까치, 어치, 직박구리, 까마귀, 갈까마귀, 떼까마귀, 오리류가 포함돼 있다. 단, 오리류 가운데 원앙, 황오리, 알락쇠오리, 뿔쇠오리 등은 개체 수가 많지 않은 데다 피해 범위가 넓지 않아 제외됐다.

까치는 전봇대 등 전력시설에 피해를 주는 점을 감안해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됐다. 분변(糞便) 및 털 날림 등으로 문화재 훼손이나 건물 부식 등의 재산상 피해를 주거나 생활에 피해를 주는 집비둘기도 포함돼 있다.

관할 지방자치단체는 유해야생동물로 농업, 임업, 어업과 관련한 피해가 발생하면 ‘야생동물법’ 등에 따라 보상한다. 단위면적당 소득액과 피해율을 곱해 보상금을 준다. 단, 500만 원을 초과할 수는 없다.

또 관할 지자체는 급격히 늘어난 유해야생동물로 인한 피해가 이어지면 포획을 허가해 개체 수를 조절하기도 한다.

● 가시박 등 생태계 교란 식물도 관리 대상

황소개구리
황소개구리
정부는 황소개구리나 돼지풀 등 생태계를 교란하는 생물이나 들고양이 등 야생화된 동물도 관리한다. 당장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생태계 교란 생물은 외국으로부터 인위적 또는 자연적으로 유입돼 생태계의 균형에 교란을 가져오거나 가져올 우려가 있는 야생생물을 말한다. 1980년대 남미에서 들여온 뉴트리아가 대표적이다. 뉴트리아는 당시 농가들이 모피용 가죽과 고기를 활용하기 위해 사육했지만 제대로 팔리지 않자 방치했다. 이후 농장에서 탈출한 뉴트리아가 야생에서 서식하면서 기존 생태계 질서를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 식용으로 들여왔지만 판로를 확보하지 못해 방치한 황소개구리와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는 셈이다.

뉴트리아
사람이나 가축에게 피해를 주고 다른 식물들이 살지 못하도록 생육을 방해하는 등 생태계를 교란하는 식물도 있다. 1980년대 남미에서 건너온 가시박이 대표적인 사례. 가시박은 제초제와 비슷한 성분을 내뿜으며 주변 식물을 말라죽게 해 ‘식물계 황소개구리’로 불린다.

현재 생태계 교란 생물로는 포유류 1종(뉴트리아), 양서류 파충류(황소개구리, 붉은귀거북속 전 종) 2종, 어류(블루길, 큰입배스) 2종 등 총 21종이 지정돼 있다. 환경부 산하 유역환경청이나 지방환경청은 생태계 교란 생물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관계 중앙행정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 방제(防除)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야생화된 동물은 버려지거나 달아난 가축이나 애완동물로 인하여 야생동물의 질병 감염이나 생물다양성의 감소 등 생태계 교란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지정한다. 들고양이가 대표적이다. 환경부는 필요하면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에게 포획 등 적절한 조치를 하도록 요청한다.

들고양이
정부는 국내에 들어올 경우 생태계에 위해를 미칠 우려가 있는 외래 생물도 ‘위해우려종’으로 지정해 관리한다. 현재 디어마우스 등 포유류 10종, 하우스 스패로 등 조류 5종을 포함해 총 128종이 지정돼 있다. 이들 생물은 원칙적으로 수입이 금지돼 있다. 다만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립생태원에서 ‘생태계 위해성 심사’를 거쳐 환경부 장관 승인을 받으면 반입이 가능하다.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반입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또 들여온 생물은 몰수된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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