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옥살이 뒤에도… 광부들의 시커먼 손 누구도 잡아주지 않았다

조종엽 기자 입력 2019-04-29 03:00수정 2019-04-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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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사북항쟁’ 토크콘서트… 1980년 6000명 총파업 투쟁
당사자들의 피맺힌 증언 쏟아져… “인간답게 살자는 몸부림이었다”
서강대에서 26일 열린 토크콘서트 ‘기억을 말한다―사북항쟁’에 참석한 신경, 이원갑, 황인호, 안재성 씨(왼쪽부터).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수사본부는 고문당하며 ‘살려 달라’ ‘차라리 죽이라’고 외치는 광부와 가족들의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우리를 고문하면서 그들은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책에서나 본 아비규환이 거기 있었다.”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는 26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토크콘서트 ‘기억을 말한다―사북항쟁’을 열었다. 1980년 4월 광부들의 노동 항쟁인 사북사건 당사자들의 증언을 듣는 자리였다. 당시 협상 대표였던 사북항쟁동지회 회장 이원갑 씨(79)는 이날 “그때 고문을 받아 39년이 지난 지금도 병원에 다니는 분도, 억울한 징역살이로 가정이 파탄된 분도 많다”며 “석방된 뒤에도 광부들의 시커먼 손은 누구도 잡아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북항쟁은 국내 최대 민영 탄광이었던 동원탄좌 사북영업소 광부와 가족 6000여 명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의하며 총파업과 지역 점거를 벌였던 사건이다. 신군부는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참여자들을 연행해 구타와 물고문을 자행했고, 이 씨 등 7명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어용’ 시비에 휘말린 노조 지부장의 부인이 정문 게시판 기둥에 전깃줄로 묶인 채 노동자들로부터 가혹한 린치를 당하기도 했다.


이 씨는 “힘없는 광부는 탄광에서 죽어도 회사의 과실을 다 뒤집어썼다”며 “사측의 ‘암행독찰조’가 광부들의 사생활을 감시했고, 노동자는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아 징계를 받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또 “자격이 없는 이가 당시까지 1년 넘게 노조 지부장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건 정권과 기업이 유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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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는 당시 항쟁지도부 신경 씨(77), 참여자로 ‘사북사태 진상보고서’를 낸 황인호 씨(63), ‘타오르는 광산’ 등을 낸 작가 안재성 씨(59) 등도 참석했다.

신 씨는 “광부와 가족들은 탄광 물이 섞인 개울물을 먹고, 베니어합판으로 지은 집에서 살았으며, 탄을 캐다가 죽는 게 예사였다”며 “노조 회의에 중앙정보부 요원이 동석해서 감시했다”고 말했다. 신 씨는 “사북항쟁은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몸부림이었다”고 말했다.

이 씨와 신 씨는 25년이 지난 2005년 민주화 운동자로 인정됐다. 황 씨는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은 이는 이들뿐이고, 당시 연행된 149명 가운데 재판에 회부되지 않은 122명은 똑같은 고문을 받았지만 기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적 구제마저 쉽지 않다”며 “학생, 지식인들과 달리 광부들은 민주화운동의 기억에서도 차별받고 있다”고 말했다.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는 사북항쟁 구술 자료 테이프 26개를 디지털 아카이브로 구축할 계획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서강대#사북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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