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도 소문난 ‘도심을 달리는 코스’…세계인 축제 된 서울국제마라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7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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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열린 2019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90회 동아마라톤은 특별한 참가자들로 붐볐다. 대회 참가를 위해 12시간의 비행 끝에 입국한 외국인부터 두 살 배기 딸을 안고 뛴 아버지,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완주한 참가자까지 모두가 이날의 주인공이었다. 이번 대회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3만 8500명이 출전했다.

풀코스 출발을 한 시간 앞둔 오전 7시 무렵 서울 광화문 광장에선 참가자들이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일본이나 중국처럼 가까운 나라에서 온 참가자뿐 아니라 미국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장시간 비행을 거쳐 온 외국인 참가자들도 있었다. 히잡을 두른 여성 2명은 몸풀기 체조를 하면서 신기한 듯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 해외에도 소문난 마라톤 코스

태국에서 자영업을 하는 나타우디 씨(50)는 사흘 일정으로 한국에 왔다. 오로지 이번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지인에게 ‘도심을 달리는 마라톤 코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출전을 결심했다. 그는 “달릴 때 고궁과 높은 건물들을 볼 수 있어 서울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아 매우 기대된다”고 말했다. 태국 방콕에서 일하는 직장인 쉘리 씨(37·여)는 전날 밤 12시가 다돼갈 무렵에 입국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뒤 17일 저녁 곧바로 출국하는 빠듯한 일정을 택했다. 말레이시아에서 달리기 동호회 활동을 하는 파티나빌라 씨(28·여)는 이날 회원 20명과 단체로 10km 코스를 뛰었다.

이날 아침 기온은 영상 2도로 쌀쌀했지만 참가자들은 다양한 복장을 뽐냈다. 영화 스파이더맨의 주인공 복장을 한 일본인 산슈 쓰바키치 씨(48)는 “7년 째 서울국제마라톤에 참가하고 있는데 이번엔 마치 영웅이 돼 서울 도심을 누비는 느낌”이라며 밝게 웃었다. 고향인 스코틀랜드의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남성도, 미키마우스 등 만화영화 주인공의 복장을 흉내 낸 참가자들도 많았다.

● 건강한 마라톤 모임에 빠진 20대

이날 풀코스 출발지인 광화문 광장과 10km 코스 출발지인 올림픽공원 곳곳에서는 20대의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다. 꼭 껴안고 완주를 다짐하는 젊은 커플 너머로 대회에 참여했다는 인증샷을 휴대전화로 찍어 남기는 대학생 참가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지난해 12월 결혼한 허지호 씨(29)와 정혜지 씨(27·여) 부부는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10km 코스를 출발했다. 직업 군인인 허 씨는 “평소 훈련량을 고려하면 완주하는 게 힘들지 않지만 오늘은 아내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에 집중할 것”이라며 “오늘 마라톤처럼 긴 인생 여정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둘이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달리기 동호회 ‘고고런’의 회원인 이주상 씨(26)는 “오늘 30여 명의 동호회 회원들과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고 대회에 참여했다”며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완주하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 시각장애인도 ‘유모차 러너’도 함께 골인


참가자들은 다양한 사연을 안고 달렸다.

시각장애 1급인 이용철 씨(60)는 이날 군인 박규남 씨(39)의 손을 붙잡고 풀코스를 완주했다. 결승선 앞에 서자 박 씨가 이 씨에게 “거의 다왔다”고 귀띔했다.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이 씨는 그제야 미소를 띠었다. 20년 전 시력을 잃고 안마사로 일 해온 이 씨는 삶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2007년부터 마라톤을 시작했다고 한다. 풀코스 완주 기록은 4시간 19분 44초. 이 씨는 “앞이 보이지 않아 마라톤을 하는 게 무섭지만 동반자분 덕분에 끝까지 완주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지난해 대회에서 풀코스를 완주했던 배종훈 씨(53)도 전동 휠체어에 아들 재국 씨(23)를 태우고 또다시 대회에 참가했다. 이들 부자는 4시간 이내 완주를 달성하면서 28번째 완주를 기록했다. 재국 씨는 희귀난치병인 근육이완증을 앓고 있다. 배 씨는 “부상 때문에 마라톤을 뛰기 힘들지만 기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볼 때면 그만둘 수가 없다”고 멋쩍게 웃었다.

동갑내기인 조대호 씨(42)와 김지연 씨(42·여) 부부는 유모차를 밀면서 10km 코스를 뛰었다. 네 살 배기 딸 남경 양이 타고 있었다. 조 씨는 “여러차례 유산의 아픔을 딛고 딸을 얻었다”며 “마라톤을 통해 딸과 ‘건강 에너지’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결승선을 통과한 사람들은 가족, 친구들과 부둥켜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완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휴대전화 ‘셀프 카메라’로 찍거나 ‘1인 방송’을 하는 20, 30대들도 있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김민찬 기자 goeasy@donga.com·송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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