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파는 작은 시옷서점 “소외받는 장르지만 롱런 꿈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5일 1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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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옷서점’은 2017년 만우절에 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처음엔 잘 믿지 않았다. 시집만 파는 서점이라니. 서점에 온 사람들은 걱정을 많이 했다. “이런 주택가 깊숙한 곳으로 누가 오겠니. 커피나 맥주를 팔아야 하지 않겠니.” 자신이 구독하는 문예지를 받을 주소를 우리 서점으로 바꿔주거나, 책꽂이를 기증하는 사람도 있었다.

역시나 장사는 잘 되지 않았다. 손님은 하루에 0.7명 온다. 낮에 열 수 없어서 저녁에만 열게 됐다. 손님이 없으니 다른 생각이 많이 났다. 시인들의 시를 가사로 노래로 만들어 녹음했다. ‘시활짝’이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발표했다. 반응이 없자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밤샘 촬영을 한 적도 있고, 남방큰돌고래를 찾아 인도네시아까지 가서 촬영을 하기도 했다.

시집 전문 서점을 낸 까닭은 시집이 소외 받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큰 서점이라도 유명한 시집 빼고는 시집을 잘 진열해 놓지 않는다. 우리 서점에서 손님이 몰랐던 좋은 시집을 만나는 기쁨을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제주도에서 시인을 꿈꾸는 청년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시집은 절판이 잘 된다. 초판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귀한 책들이 많다. 시옷서점은 제주도 지역 출판사인 한그루와 함께 시집 리본시선을 만들었다. 그 첫 책으로 강덕환 시인의 시집 ‘생말타기’를 26년 만에 복간했다. 그리고 독립출판사 ‘종이울림’을 만들어 두 여고생의 시집을 묶었다. 제목은 ‘십팔시선’이다. 스무 살이 되기 전 그들만의 세계를 저장해 두고 싶었다.

이달에는 ‘시활짝’ 2집을 제작할 예정이다. 팟캐스트도 시작했다. 시를 읽고,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마도 소수 몇 사람만 듣겠지. 그래도 우리는 롱런을 꿈꾼다. 내년에는 문예지나 웹진도 만들어볼 생각이다. 이름도 이미 지었다. ‘시린발’. 발이 시린 시인들을 위한 문예지.
어떤 날엔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고, 귀뚜라미 한 마리만 들어온 적이 있다. 손님의 반 이상은 시인들이다. 시는 무용한 것들을 사랑한다. 천만다행으로 건물주가 시인이라서 이런 무용한 가게를 위해 낮은 임대료를 받는다. 우리는 그의 장수를 기원한다.

텐트를 들고 온 어떤 손님은 시옷서점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자고 갔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그는 오름에 올라 별을 찍는다고 했다. 그런 것을 찍는 그의 마음처럼 우리는 저 멀리 있는 시를 찍어 여기에 펼쳐둔다. 그러한 시들이 반짝이는 이 곳은 무용한 마음을 파는 작은 서점이다.

현택훈 시인·제주 ‘시옷서점’ 대표

●‘시옷서점’은 제주시 인다13길에 있는 시집 전문 서점이다. 시인 부부가 운영한다. 시집과 함께 시인이 쓴 산문집, 제주 작가의 책들을 주로 판매한다.

조종엽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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