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에 묻히는 카슈끄지… 트럼프 “사우디, 변함없는 동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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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 개입 결정적 증거 없자 사우디 편들며 美이익 수호 나서
성명후 유가 연중 최저치 하락
트럼프 “미국 우선주의에 따를 것, 세계를 위한 감세… 쌩큐 사우디”
사우디 왕세자 12월 G20 참석… 피살사건후 첫 해외일정 나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변함없는 동반자로 남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터키 이스탄불 내 사우디총영사관에서 피살당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사건과 관련해 20일 백악관 홈페이지에 이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이 비극적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을 수도,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며 “우리는 (카슈끄지 사건에 대한) 모든 사실을 영영 알 수 없을지 모르지만 어찌 됐든 우리는 사우디와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슈끄지 살해의 배후를 밝히기 위해 두 달 가까이 이어져 온 터키와 사우디의 ‘진실 공방’에서 사우디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사우디 왕실에 비판적인 기사를 써 온 카슈끄지는 10월 2일 이스탄불 사우디총영사관을 찾았다가 사우디 암살팀에 의해 살해됐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 왕세자가 살해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내용의 미 중앙정보국(CIA) 보고를 받았으나 CIA가 결정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평가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결정이 ‘미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했다. 성명은 “사우디가 미국에 4500억 달러(약 508조70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고, 이는 수많은 일자리와 거대한 경제적 발전, 부(富)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밝힌 뒤 “만약 어리석게도 (사우디와의) 계약을 취소한다면 러시아, 중국이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만약 우리가 사우디와 관계를 단절한다면 기름값이 지붕을 뚫고 치솟을 것”이라며 “나는 세계 경제를 파괴하지 않을 것이고 사우디와의 관계에서 바보처럼 굴어 미국 경제를 해치지도 않을 것”이라고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이어 “오늘 성명은 분명히 내가 말한 것”이라며 “아메리카 퍼스트와 관련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카슈끄지 사건과 관련해 사우디를 추가 제재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카슈끄지 사건은 ‘시신 없는 살인사건’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성명 발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은 사우디에 대한 초당적 제재를 요구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도덕적 목소리를 잃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고, 공화당의 랜드 폴 상원의원도 “사우디에 맞서지 않겠다는 나약함을 보여준 것”이라고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20일 국제 유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우디 성명 발표 이후 연중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날보다 6.59% 하락한 배럴당 53.43달러에 장을 마쳤다. 13개월 만의 최저치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오전 트위터에 “유가가 더 낮아지고 있다. 미국과 세계를 위한 큰 감세와 같다”며 “즐겨라. (배럴당) 82달러였던 게 (지금은) 54달러”라고 적었다. 이어 “사우디에 고맙다”라며 공을 사우디에 돌렸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사우디는 “유가가 너무 낮다”며 미국과 대립각을 세웠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하루 평균 50만 배럴 감산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를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나선 만큼 “사우디가 감산 입장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한편 무함마드 사우디 왕세자는 다음 달 1일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카슈끄지 피살 사건 이후 첫 해외 일정이다. 반(反)사우디 편에 섰던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자리에 나서는 것은 “자신이 배후라는 것을 입증할 증거는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 / 구가인 기자
#카슈끄지#트럼프#사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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