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으러 왔다가 마음 열고 고민 술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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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거리상담’ 찾은 청소년들

서울시 산하 청소년시설들이 16일 강북구 수유동 어린이놀이터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연합거리상담을 하고 있다. 중고생들은 이곳에서 간식을 먹고 활동을 하며 상담 강사들과 가까워진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서울시 산하 청소년시설들이 16일 강북구 수유동 어린이놀이터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연합거리상담을 하고 있다. 중고생들은 이곳에서 간식을 먹고 활동을 하며 상담 강사들과 가까워진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16일 오후 5시 반 서울 강북구 수유동 상산놀이터. 땅거미가 질 무렵 검은색 롱패딩을 입은 중고생 30여 명이 삼삼오오 앉았다. 파란색 천막 부스 아래 실을 엮어 팔찌를 만드는 여학생들, 갓 구워진 따끈따끈한 와플을 먹는 남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부스 곳곳에는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의 개념과 청소년 일시쉼터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설치됐다. 천막 아래 ‘서울시 청소년시설 연합거리상담’이라는 주황색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또 힘들어지면 다른 데 말고 꼭 쉼터로 와야 돼, 알았지?”

남자친구와 함께 타로 카드를 뽑고 청소년센터 상담자원활동가가 해주는 해석에 한참 깔깔대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에게 상담자원활동가가 한마디를 건넸다. 활동가와 웃고 떠들던 여학생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활동가는 “이전에 가정폭력 등으로 잠시 청소년쉼터에 있다가 귀가한 학생인데 거리상담에 남자친구를 데리고 놀러 온 것”이라며 “그러나 가정이 아직 완전히 안전한 상태가 아니라서 위험한 상태일 때 쉼터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강북청소년드림센터 김은영 센터장은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을 조기에 발견해 유해 환경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한편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시설과 연계하려는 목적”이라며 “청소년들에게 편안하게 가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한 주에 80∼100명의 학생이 찾는다”고 전했다.

이곳에 모인 청소년들은 가출을 해봤거나 생각해본 학생이 많다. 이름과 나이, 가출 경험 유무, 방문 목적 등을 적도록 돼 있는 방명록에 학생 30여 명 중 절반가량이 가출 경험이 있다고 표시했다. 서울시립 용산청소년일시쉼터 이현재 활동가는 “처음에는 (학생들이) 상담에서 제공하는 간식이나 식사, 놀거리 때문에 오지만 자주 보며 안면을 트고 신뢰를 쌓다 보면 고민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후 7시경 주변이 어두워지자 학생들은 더 늘어났다. 그중에는 또래를 돕기 위해 온 학생들도 있었다. 막 수능을 치른 이동윤 군(19)과 친구 5명이 그들이다. 4년째 매주 꼬박꼬박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지역청소년상담센터에서 친구들과 ‘집에서 혼자 해먹기 쉬운 요리’ 프로그램 강좌를 들은 것을 계기로 이현재 활동가와 친해지며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이 군은 “고등학교에 올라온 후 어머니와 진로 갈등을 겪으며 종종 ‘집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욱하기도 했다”며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네가 집 나가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봐라. 지금은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냉정하게 얘기해주셔서 갈등을 풀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상산놀이터에서는 매주 금요일 오후 서울강북청소년드림센터 등이 위기청소년 관리와 상담에 나선다. 이날은 서울시립 용산청소년일시쉼터와 서울시립 청소년이동쉼터, 강북청소년드림센터가 참여한 연합거리상담이 열렸다. 청소년 연합거리상담은 학교밖청소년지원시설 등 70여 개의 청소년 유관기관 주최로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시내 20여 곳에서 1년에 4차례 열린다.

청소년 거리상담에는 남모를 고충도 많이 따른다. 위기 청소년에게 반감을 갖는 주민들이 있는데, 이날도 근처에 사는 중년 여성에게서 항의가 들어왔다. 이 여성은 “놀이터에서 저것(거리상담)만 하면 아주 골목에서 애들이 담배를 피우고 침 뱉고 과자 봉지를 버리고 난리다”라며 “몇 번이나 구청과 경찰에 항의했다. 왜 이걸 꼭 여기서 해야 하냐”고 언성을 높였다. 자원활동가들은 “관리를 잘하도록 하겠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청소년이동쉼터 윤광수 소장은 “주민 항의가 들어오지 않을 만한 적절한 공간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시 평생교육국 관계자는 “청소년 상담 프로그램을 위한 예산을 더 확충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서울시 거리상담#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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