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삶과 죽음 바라보는 인간의 이중성 파헤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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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박지리 지음/164쪽·1만1000원·사계절

“‘유일한’이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인간은 놀림을 당하듯 저 혼자만으로는 유일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 점심 급식을 먹으려고 식당에 줄을 서 있을 때도, 교정을 지나다 꽃나무 아래에서 재채기를 할 때도,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갈 때도.”

이 소설의 주인공은 1년 전 발생한 고교 총기난사 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다. 죽은 18명의 학생을 추모하는 참사 1주기 추도식 다음 날, 그는 숙제를 하지 않거나 이유 없이 조퇴를 해도 특별대우를 할 뿐인 학교를 벗어난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 작품은 2010년 ‘합체’로 등단해 ‘맨홀’, ‘양춘단 대학 탐방기’,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등 독특한 작품들을 남기고 2년 전 3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저자의 마지막 유작이다. 고등학생들의 죽음과 남겨진 소년의 이야기란 점에서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출판사에 따르면 작가는 이 소설을 참사 발생 이전에 집필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주변의 관심을 감당하기 버겁다. 혼자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허무함과 더불어 공범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느낀다. ‘번외’로 얻은 삶이 자기 것이 아닌 것만 같다. 먹고, 배설하고, 변명하며 삶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야비하고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불쑥 나타나는 살고자 하는 스스로의 욕망에 혼란스러워한다.

한편, 어린 학생들의 죽음과는 달리 학교 옆 공사장 인부의 죽음은 아주 쉽게 잊혀진다. 주인공이 하루 동안 만난 낯선 이들과 나누는 대화는 ‘과연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모든 이의 목숨은 소중한가’를 돌아보게 만든다.

소설 ‘번외’는 1년 전 고교 총기 난사 사건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소년이 학교 밖을 나가 하루 동안 배회하는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이어진다. 사계절 제공
소설 ‘번외’는 1년 전 고교 총기 난사 사건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소년이 학교 밖을 나가 하루 동안 배회하는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이어진다. 사계절 제공
“그런데 이봐요, 그건 정말 우리나라에서 유례가 없는 안타까운 죽음이었기 때문에 온 국민이 함께 추모를 한거지. … 이 사람 저 사람 다 죽는다고 사이렌을 매번 울리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어요.”

나아가 이 책은 ‘인간은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동물원에 간 주인공은 사람들이 고귀하게 여겨 마지않는 인간의 삶과 그렇지 않은 동물의 삶을 비교해 본다. 허무한 죽음들 앞에서 삶에 대한 이유를 찾고자 한다. 종국엔 교우 18명을 살해한 K는 ‘용서받을 수 없다’면서도, 어쩐지 그의 편으로 돌아서기도 한다. 일찍이 살고자 하는 것엔 미련이 없었던 K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일까?

무료 급식시설을 운영하는 베드로 신부는 주인공이 만난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삶과 죽음에 초연하다. 베드로 신부는 급식소에 오는 부랑자들 일부가 자신을 대상으로 살인 모의를 하는 것을 알지만, 그 자체도 삶이 지닌 모순임을 인정하며 살아간다.

“모든 인간은 결국 다 살해돼 죽는 거예요. 인간의 숨을 거두어가는 손길은 다 살인 아닌가요?”

짧은 분량 안에 죽음을 마주하는 사회의 시선, 평등 논리와 이중 잣대,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이중적 욕망 등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녹여 냈다는 사실이 거듭 놀랍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번외#박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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