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탐라’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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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문화제 등 사업은 넘쳐나지만 고고학적 실체 연구-지원은 미미
발굴 유적도 개발사업으로 사라져… 체계적 발굴조사-기념관 건립 시급

국립제주박물관서 11월까지 ‘탐라 특별전’ 고대 제주의 왕국인 ‘탐라’를 조명하는 첫 특별전시가 19일부터 11월 4일까지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알 수 있듯이 탐라의 존재는 확실하지만 왕국을 증명하는 유물 발굴이 미흡하다. 그나마 발굴작업이 이뤄진 제주시 외도동 탐라 전기 유적이 사라지는 등 보전작업이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립제주박물관 제공
국립제주박물관서 11월까지 ‘탐라 특별전’ 고대 제주의 왕국인 ‘탐라’를 조명하는 첫 특별전시가 19일부터 11월 4일까지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알 수 있듯이 탐라의 존재는 확실하지만 왕국을 증명하는 유물 발굴이 미흡하다. 그나마 발굴작업이 이뤄진 제주시 외도동 탐라 전기 유적이 사라지는 등 보전작업이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립제주박물관 제공

17일 오전 제주시 외도동 대로변 건물 신축 공사 현장. 지상 4층, 연면적 909m² 규모의 건물을 짓기 위해 펜스가 설치됐다. 몇 개월 전만 해도 탐라시대 전기 유물을 발굴한 모습이 보존돼 있었지만 지금은 평탄 작업 등으로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다. 이곳에서 2001,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 작업을 진행한 결과 탐라 전기인 3세기경 우물 13기를 포함한 수혈(竪穴)유구 48기, 주거지 2기 등이 확인됐고 적갈색 경질토기, 외반구연토기 등 유물 500여 점이 출토됐다.

○ ‘탐라’가 없는 제주

외도동 유적은 토목기술자 집단의 석축 및 석조우물 축조와 장인 집단의 표준화된 토기 생산 등 탐라 전기 분업화한 사회조직을 보여주는 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학계에서는 석기 유물이 출토되지 않은 점으로 미뤄 이 시기 탐라가 본격적인 철기시대에 진입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건물 신축 공사로 탐라 전기를 대표하는 외도동 유적이 사라지게 됐다.

외도동 유적과 더불어 탐라시대 수장층이 존재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제주시 용담동 철기부장묘 유적 관리도 소홀하기는 마찬가지다. 용담동 유적에서는 변한, 진한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철제 장검, 고사리 문양의 궐수문 등이 출토됐다. 이는 탐라 전기 지배층이 있었다는 결정적인 단서다. 탐라시대를 밝히는 유물 유적이 미미한 현실에서 그나마 있는 유적마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헌상으로 ‘탐라’가 독립국가로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기록이다. 여기에 ‘문주왕 2년(476년) 탐라국에서 공물을 바치자 왕이 기뻐해 사자에게 은솔의 관직을 주었다’는 내용이 있다. 이후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계체기 2년(508년) 탐라인이 처음으로 백제와 통교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문무왕 2년(662년) 탐라국주 도동음율이 신라에 투항하여 속국이 됐다’고 적혀 있다. 일본서기에서는 7세기 다양한 교류가 확인됐다. 문헌자료, 유물 등으로 보면 탐라는 3∼5세기에 영산강 유역의 마한세력을 기반으로 변한이나 남부 가야와 활발하게 교류했고 6∼9세기에는 백제와 신라의 통제를 받으면서 대외 교류가 축소됐다.

○ 발굴조사와 보전사업 필요

매년 제주를 대표하는 축제인 탐라문화제를 개최하고 제주시 동문 로터리에 탐라광장을 조성하는 등 고대 제주의 왕국인 ‘탐라’를 기반으로 한 사업이 넘쳐나고 있지만 정작 탐라의 실체에 대한 연구나 지원은 미미하다. 국립제주박물관이 19일부터 11월 4일까지 마련한 기획 특별전인 ‘탐라’가 고대 탐라를 조명하는 첫 전시일 정도다. 전시회에서는 탐라 관련 역사서와 탐라인의 생활도구, 지배층의 위세품, 교역물품 등 400여 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알 수 있듯이 탐라의 존재는 확실하지만 고고학적 유물은 부족하다. 탐라가 국가로서 체제를 갖췄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하려면 왕의 무덤이 나와야 하지만 아직까지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유물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김경주 제주문화유산연구원 부원장은 “탐라의 고고학적 현장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대대적인 발굴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그나마 발굴한 탐라 유적은 개발사업, 사유권 행사 등으로 사라지고 있어 탐라의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한 발굴조사와 기념관 건립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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