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평창까지… 자원봉사가 인생을 바꿨죠”

조응형 기자 입력 2018-09-17 03:00수정 2018-09-1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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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서 법학박사’ 구건서씨
1981년 개최 확정되자 영어공부… 외국 귀빈 차량 운전업무 맡아
중3때 포기한 학업도 다시 시작
구건서 씨는 1988 서울 올림픽에 자원봉사자로 나서 귀빈 수송 업무를 맡았다. 30년 뒤인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는 출입증 발급 업무를 맡았다. 그는 “1988년 당시 사진(왼쪽)과 2018년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구건서 씨 제공

37년 전 구건서 씨(61)는 택시 운전사였다. 갓 입사해 빡빡한 격일제 근무를 하던 그는 1981년 9월 서울이 일본 나고야를 꺾고 1988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영어 공부를 결심한 것은 이때였다. 올림픽 개최까지는 7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는 “영어 공부를 해두면 외국인들과 편하게 소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손님이 없으면 영어 테이프를 틀어두고 따라 했다”고 말했다.

영어 회화 테이프가 늘어져 듣지 못할 때까지 반복 연습하기를 6년. 방송국 주최로 열린 운전사 영어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받은 그는 외국인 귀빈 수송 자원봉사자로 뽑혔다. 그는 “당시 정부에서 수송 자원봉사자를 보내면 회사에 차량 1대를 증차해 줬다. 그 덕분에 회사 눈치 안 보고 자원봉사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의 시장 스테판 니노프(76)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당시 소피아는 올림픽을 5일 앞두고 서울에서 열린 94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1994년 겨울올림픽 개최 경합을 벌였다. 노르웨이 릴레함메르가 개최지가 되면서 소피아 시장은 그와 함께 서울을 관광하며 쓰린 속을 달랬다. 구 씨는 “서울을 보면서 감탄하던 그의 표정이 생생하다. ‘서울이 이렇게 발전된 도시인 줄 몰랐다’고 여러 번 얘기하더라”고 말했다.

영어 공부와 올림픽 자원봉사 경험은 학업에 대한 열정에 불을 댕겼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3학년 때 학업을 중단했던 그는 이후 독학으로 고입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2007년 대학독학사(법학 전공)로 대학 과정까지 마쳤다. 1989년에는 공인노무사 시험에 합격했다. 올해 2월에는 고려대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그는 올해 평창 겨울올림픽에도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출입증 발급 업무를 맡았다. 2002 한일 월드컵 때도 자원봉사자로 선정됐지만 다른 일정과 겹쳐 포기해야 했다. 그는 “‘자원봉사 그랜드슬램’을 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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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환 씨(73)도 서울 올림픽과 평창 올림픽에 모두 참여한 자원봉사자다. 대우중공업 독일 프랑크푸르트 지사에서 일해 영어와 독일어에 능통했던 그는 잠실 주경기장에서 외국인 관광객 안내를 맡았다. 30년 뒤 평창에서는 녹슬지 않은 외국어 실력으로 안내 센터 근무를 자원했다.

17일 서울 올림픽 3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당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2만6000여 자원봉사자들의 노고를 기린다. 이 행사에 참가하는 최 씨는 “내 나이가 일흔이 넘었다. 국가를 위한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하고 올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앞으로도 내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돕고 싶다”고 다짐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88 서울 올림픽#평창 겨울올림픽#구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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