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지어 하는 법·생리 대처법 등 성장기 고민도…초등생들 “아이돌보다 유튜버”

신규진기자 , 조종엽기자 입력 2018-07-15 16:31수정 2018-07-1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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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노원구의 한 음식점에서 윤주가 유튜브에 올릴 저녁 식사 장면을 찍고 있다. 어릴 때부터 유튜브를 보고 자란 ‘유튜브 세대’는 화장법을 찍거나 부모의 도움을 받아 ‘생활 밀착형’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다들 잘 살아있지?”

13일 오전 10시 서울 노원구의 한 초등학교의 수학 시간. 윤주(11·가명)양은 필통 속에 휴대전화를 숨긴 채 실시간 방송을 켜고 조용히 말했다. 수업시간이었지만 친구들 9명이 접속했다. ‘배고파ㅠ 2시간 만 참자’ ‘ㅋㅋ너무 졸려’ ‘샤프를 바꿨더니 글씨가 예뻐졌다’ 등 대화가 오고갔다.

“파공(파우치 속 화장품 공개) 할 사람~”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옆 친구가 소리쳤다. 아이들 3명이 화장품을 가지고 모여 들었다. 친구들은 보름 동안 모은 용돈으로 산 틴트와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바르면서 저마다 동영상을 찍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교실에는 “지금 방송 켰으니까 빨리 들어와” “좋아요랑 구독 눌러” 등의 소리로 가득 찼다. 액체괴물을 주무르면서 방송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반 친구 35명 중 절반 이상이 유튜브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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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6시 영어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온 윤주는 또 방송을 켰다. 그는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오늘 너무 더워서 화장이 다 지워졌다”고 읊조렸다. 하루 만에 윤주가 유튜브 계정에 올린 동영상은 5개. 논술 학원을 가기 전 저녁을 먹어야 한다던 그는 “어제 친구들과 김치찌개를 먹는 ‘먹방’을 찍기로 했다”며 식당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 연예인보다 친근한 유튜버 따라하기

윤주는 입학 전부터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자랐다. 영어 만화부터 아이돌 뮤직비디오까지 기존 TV의 역할을 유튜브가 완전히 대체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익숙하게 사용해 온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일상은 유튜브 그 자체였다.

걸그룹 춤을 따라하던 아이들은 이제 유튜버를 모방한다. 연예인보다 더 친근하고 ‘생활 밀착형’ 콘텐츠 위주라 따라하기도 쉽다. 한 유튜버의 ‘엄마 몰래 라면 끓여먹기’ ‘친구 놀래 키기 몰카’ 등 동영상을 보고 아이들은 유사한 내용의 동영상을 본인 계정에 찍어 올린다. 조회수가 높지 않아도 친한 친구들끼리 댓글로 ‘그들만의’ 소통이 이어진다. 성인들의 ‘단체 카톡방’과 유사하다. 하모 씨(44·여)는 “먹방을 꼭 틀어야지 아이가 밥을 먹는다”며 “먹방을 보고 탕수육을 시켜 먹자고 할 때도 있다”고 했다.

‘집중하는 법’ 등 공부법(?)부터 성장기 아이의 고민들도 유튜브가 해결해준다. ‘브래지어 하는 법’ ‘초등학교 생리 대처법’ ‘5학년 몸무게’ 등 관련 동영상 댓글에 다른 고민글을 올리고 답을 얻는다. 김민지 양(12)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물어보기 부끄러운 것들을 찾아본다”며 “친구들끼리 영상을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고 했다.

개인 계정을 이용해 아이들이 실시간 방송을 하려면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만 14세 이상부터 구글 계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영유아 대상 ‘유튜브 키즈’ 애플리케이션(앱)이 있지만 대부분 초등생들은 부모의 동의 하에 성인들이 이용하는 유튜브 앱을 이용한다. 부모 휴대전화를 이용해 몰래 계정을 만드는 아이들도 있다. 11세 아들을 둔 유모 씨(38·여)는 “요새 아이들의 주요 대화 주제는 유명 유튜버”라면서 “유행에 아이가 뒤쳐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 아이 유튜버 만들기 광풍


아이들 대상 유튜브 콘텐츠는 ‘핫’하다. 한 초등생이 올린 ‘연예인 메이크업 따라잡기’ 동영상은 103만 회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러다보니 부모들 사이에서 자녀를 유튜버로 키우려는 열풍마저 분다.

온라인을 맘카페에는 “4살짜리 아들을 유튜버로 만들고 싶어요” “갓난아이로 유튜브 하시는 분 계신가요”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유튜버로 돈 버는 법’ ‘아이 유튜버 만들기’ 등 인터넷 유료 강의도 인기다. “검색어 중복을 피하라” “첫 화면을 잘 꾸며라” 등 조회수를 늘려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팁이 대부분이다. 정모 씨(42·여)는 6살짜리 딸아이를 유튜버로 키우기 위해 동영상 제작 프로그램 ‘프리미어 프로’ 강의를 듣고 있다. 정 씨는 “부업으로 수익도 얻고 아이가 나중에 자기소개서 등에 ‘유튜버’라는 경험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고 했다.

57만 명 구독자를 끌어 모은 ‘마이린TV’ 최린 군(12)의 아버지 최영민 씨(47)는 “유튜브를 시작한 3년 전보다 부모들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했다. 성공 비법을 공유해달라는 부모들도 많다”며 “유행을 타 무작정 뛰어들기보다 광고 수익, 인기 콘텐츠 분석 등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아들의 스마트폰 압수하자 기행동을…▼

“이제는 엄마와 눈도 마주치려하지 않아요….”

10세 아들을 둔 A 씨는 올 4월 서울 강남구의 한 상담센터를 찾아 울먹였다. 2년 전 맞벌이 부부인 A 씨는 아들에게 휴대전화를 선물했다. “유튜브 없으면 왕따”라는 아들 말에 설치를 한 게 화근이었다. 아들은 하루 8시간 씩 한 인기 유튜버의 비디오 게임 방송을 시청했다. 10분짜리 동영상을 클릭 할 때마다 나오는 수십 개의 관련 동영상을 아들은 연이어 시청했다. 그 중엔 여성 유튜버의 신체가 노출된 동영상도 있었다.

휴대전화를 압수하자 아들의 기행동이 시작됐다. 숙제를 시키면 10분도 집중하지 못해 거실로 뛰쳐나왔다. 밥을 먹을 때도 아들은 가족들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방문을 닫고 혼자 울기도 했다. 상담사는 “친구들에게 뒤쳐진다는 불안감과 부모에 대한 실망으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며 “유튜브 시청으로 불화를 겪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2017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서 과의존 비율은 성인(17.4%)보다 유아·아동(19.1%)과 청소년(30.3%)에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TV·동영상(17.2%)이 게임(43.1%)과 메신저(32.7%)에 이어 부작용이 우려되는 콘텐츠로 조사됐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초등학생 저학년(1~3학년)의 31.7%, 고학년(4~6학년)의 68.2%, 중학생의 93.0%가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유아·아동이 강력한 시청각적 자극에 반복적으로 장기간 노출되면 뇌가 균형 있게 발달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동영상 시청이나 게임 등을 지나치게 오래하면 ‘팝콘브레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뇌가 튀긴 팝콘처럼 곧바로 튀어 오르는 것에 반응할 뿐 느리게 변하는 진짜 현실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지는 것을 말한다.

부모들이 보채는 유아를 달래기 위해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것도 좋지 않다. 6세 이하 아동이 있는 부모를 표본 조사한 최근 한 연구에서 부모의 양육 스트레스가 높을수록 아동의 미디어 사용 시간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재성 한국정보화진흥원 선임연구원은 “스마트폰 동영상 채널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는 창구로 활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부모와 자녀가 스마트폰의 사용 이유와 목적을 명확하게 정하는 게 과의존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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