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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글로벌 이슈/구자룡]여전히 만만치 않은 러시아

입력 2018-07-02 03:00업데이트 2018-07-02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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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러대화 제4차 포럼에서 알렉산드르 파노프 한러 소사이어티 부회장(전 주한 러시아대사)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글레프 이바셴초프 전 주한 러시아 대사,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파노프 부회장. 모스크바=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구자룡 이슈&피플팀장·전 베이징 특파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지난달 22일 열린 ‘한러대화(KRD) 제4차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전날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하던 한국의 H 교수는 심사대 앞에서 ‘벌을 받듯’ 30분가량 멀뚱히 서 있어야 했다. H 교수는 “직원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뭔가를 찾는 시늉은 했지만 고의로 시간을 끄는 것이 분명했다”며 러시아 전직 관료와 외교관, 교수 등이 참석한 포럼에서 공개 항의했다. 러시아 측 인사는 “어느 나라나 태만한 공무원은 있다”고 얼버무렸지만 H 교수는 “얼마 전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던 기록을 여권에서 발견하고 터무니없는 보복을 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상호 무비자를 하는 등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무색하다.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한 뒤 나타난 신냉전의 찬 기운이 느껴지는 사례다.

한국이 서방과 러시아 간 안보 갈등 틈바구니에서 남북러 경제협력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제4차 KRD 포럼의 날선 공방에서도 확인됐다.

디야츠코프 모스크바국제관계대 조교수는 “북한은 안보 위협을 느껴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을 지속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글레프 이바셴초프 전 주한 러시아대사는 “미국의 변덕도 문제”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든 6·12 북-미 싱가포르 합의를 파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이란 핵합의 파기에서도 드러났다”고 말했다. 게오르기 쿠나제 전 주한 러시아대사는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체제 보장 장치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창용 가톨릭관동대 교수(전 주러시아 공사)는 “최근 러시아 고위 외교 관료들이 잇따라 대북제재 해제의 가능성을 먼저 언급하는데 러시아는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를 이끌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쿠나제 전 대사는 “한국전쟁 종료 이후 한국은 북한에 대해서 공격적인 행위를 한 적이 없었으나 북한은 한국에 수차례 군사적인 도발을 감행했다”면서도 “이러한 경험을 돌이켜 보면 어떠한 나라에 안전보장이 필요한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북한의 핵무장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쿠나제 전 대사는 특히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북한은 재래식 무기를 휴전선에서 후퇴시키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도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함께 북한에 중국군 주둔을 제한적으로 허용할 권리가 왜 없겠느냐”고 도발적인 발언도 했다.

변대호 전 주크로아티아 대사는 “중국군 주둔은 북한의 자주 외교 노선을 따져보더라도 불가능하며 오히려 한미 군사동맹의 공고화 명분만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르바노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교수도 “중국군의 북한 주둔은 김정은도 반대할 것”이라며 “북한의 주체사상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한국 전문가들은 북한을 두둔하고 미국을 몰아붙이면서 ‘중국군 북한 주둔’까지 나오자 “러시아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토론에 참석한 러시아 측 인사들은 전직 주한 대사와 교수 등 지한파(知韓派) 인사들이다. 더욱이 이날은 양국 정상회담에 맞춰 ‘전략적 외교 협력’ 방안 등을 찾아보자고 모인 자리였다.

그럼에도 제빈 극동연구소 한국학센터 소장은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동맹 구조가 형성되는 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7500만 인구를 가진 통일 한국과 국경을 맞대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포럼이 열리고 있는 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크렘린 대궁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시베리아와 한반도 철도 연결 등 32개항의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하루 앞서 문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하원 두마에서 연설하며 우호 분위기를 돋웠지만 러시아의 속내는 알기 쉽지 않다. 청와대는 지난달 25일 양국 대통령이 몸을 바짝 붙인 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공개하며 양국의 가까워진 거리를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을 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여정에 중국 일본 미국, 그리고 러시아 모두 약간씩 다른 이유로 만만치 않음을 느낄 것 같다. ―모스크바에서
 
구자룡 이슈&피플팀장·전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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