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문명 개척의 길 밝혀준 등대의 역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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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의 세계사/주강현 지음/376쪽·2만 원·서해문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등대인 ‘헤라클래스’ 등대. 서해문집 제공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등대인 ‘헤라클래스’ 등대. 서해문집 제공
1994년 프랑스 고고학 연구진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해변에서 약 6km 떨어진 수중에서 거대한 암석덩어리들을 발견했다. 호메로스 ‘오디세이’ 등에 기록된 전설의 등대 ‘파로스’의 흔적을 찾은 것이다. 기원전 3세기경 세워진 이 등대는 높이가 120∼140m 정도로, 50km쯤 떨어진 거리에서도 불빛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00여 년 전에 오늘날 40층 빌딩 높이에 맞먹는 건축물이라니. 파로스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이유다.

파로스는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가장 오래된 등대지만 현재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등대는 1세기 스페인 북서쪽 라코루냐에 지어진 55m 높이의 ‘헤라클레스’다. 로마의 정복자 카이사르가 지배하던 시기에 지어진 이 등대는 약 1900년이란 시간이 흐른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18세기에 증축되며 로마 건축 양식과 신고전주의 방식이 혼합된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헤라클레스 등대를 보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 지금도 피카소 박물관에선 그 등대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제주대 석좌교수인 저자는 역사학 민속학 인류학 고고학 등 다양한 연구를 바탕으로 해양문명사에 매진해온 학자. ‘등대의 세계사’는 그의 장기를 십분 발휘해 인류와 함께한 등대의 역사를 꼼꼼히 짚어냈다. 직접 이집트와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을 답사해 눈앞에 있는 듯 생생하게 다양한 등대를 묘사한 것도 인상적이다.

책에선 주로 서양의 등대를 다루고 있지만, 오히려 저자는 서양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시종일관 강조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대항해는 이슬람 유산에 기원을 두고 있고, 중국의 산정에 세워진 불탑과 일본의 항구나 사찰에 세워진 석등도 전통 등대였다고 말한다. 제주도의 토착 등탑인 도대불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는 “바다를 향한 인간의 의지는 단절 없는 등대 건설로 표현돼 왔다”며 등대의 역사적 의의를 밝혔다. 한국 사회에 신선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등대의 세계사#주강현#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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