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가득한 서구사회 고발… 美 현대문학의 거장 잠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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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필립 로스 85세로 타계
‘미국의 목가’로 퓰리처상 수상
30편 넘는 왕성한 작품활동…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

필립 로스는 50년 넘게 화제작을 꾸준히 발표하며 문학사에 굵직한 자취를 남겼다. 동아일보DB
필립 로스는 50년 넘게 화제작을 꾸준히 발표하며 문학사에 굵직한 자취를 남겼다. 동아일보DB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가 타계했다. 향년 85세.

뉴욕타임스(NYT)는 고인이 울혈성심부전으로 숨졌다고 22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미국의 유명 문학평론가인 해럴드 블룸은 고인을 코맥 매카시, 토머스 핀천, 돈 드릴로와 함께 ‘미국 현대 문학의 4대 작가’로 꼽았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1933년 미국의 폴란드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고인은 시카고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이후 프린스턴대, 펜실베이니아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품을 썼다.

고인은 유대인으로서 정체성을 탐구하기보다는 유대계 이민자들이 미국의 중산층이 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변해갔는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탐색했다. 1959년 펴낸 첫 소설집 ‘굿바이, 콜럼버스’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금기를 거부하고 욕망을 긍정하는 유대인 변호사의 성생활을 고백한 ‘포트노이의 불평’(1969년)은 과거 유대계 미국인 소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인물을 선보였다는 호평을 받으며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화자(話者)로 네이선 저커먼을 내세운 3부작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미국의 목가’, ‘휴먼 스테인’은 미국의 현대사가 개인을 어떻게 억압하고 파멸시켰는지를 집요하게 파헤침으로써 인간의 독선과 편견으로 가득 찬 현대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인기 있는 운동선수로, 미국 중상류층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유대계 남성이 1960, 70년대 사회 격변으로 파멸하는 과정을 그린 ‘미국의 목가’는 1998년 그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줬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라 미국에 관해 쓴다”는 고인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문 소설’로 꼽혔다.

또 다른 대표작인 ‘휴먼 스테인’은 피부색이 흰 콜먼 실크 교수가 흑인임을 숨기고 유대인 행세를 하며 성공과 명예를 거머쥐지만 말실수로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몰락하는 내용을 그렸다. 미국역사가협회상을 수상한 ‘미국을 노린 음모’를 비롯해 ‘에브리맨’ ‘네메시스’ ‘죽어가는 짐승’ ‘전락’ ‘울분’ 등 30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정영목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는 고인에 대해 “소설과 개인사가 구분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이는 소설을 쓴다는 것이 곧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계층, 인종, 민족, 국가에 내포된 폭력성과 배타성을 비판하고, 인간이 타자를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함은 결국 자기 파괴로 이어진다는 것을 엄중하게 경고했다. 고인은 자신의 삶을 미국 흑인 권투선수 조 루이스(1914∼1981)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평가했다.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필립 로스#미국의 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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