票 노린 정치 ‘기본소득 소생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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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중단에도 뜨거운 이슈로

《 아무런 조건 없이 누구에게나 ‘공짜 생활비’를 주는 기본소득보장제가 유럽에서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 제도를 세계 최초로 시범 시행했던 핀란드가 2년 만에 중단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유럽 좌파는 멀어져 가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기본소득 공약에 여전히 매달리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인 일부도 찬성한다. 기본소득은 약일까, 독일까. 》
 
핀란드가 2년 전 세계 최초로 시행한 기본소득보장제를 접기로 했다는 최근 외신 보도 이후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이후 핀란드 정부가 실험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며 차기 정부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해명했지만 소득과 자산 수준에 상관없이 일정 수준의 생활비를 무상 지급하는 기본소득보장제는 찬반 논란이 뜨거운 이슈다.

최근 각종 선거에서 참패하고 있는 유럽 좌파 진영은 이 제도의 실효성 논란과는 별개로 기본소득 도입을 주요 공약으로 계속 검토하고 있다. 많은 유권자들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기본소득제를 재기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총선에서 역대 최저 득표율을 기록한 독일 사회민주당(SPD)이 대표적이다. 차기 사민당 유력 지도자로 거론되는 미하엘 뮐러 베를린 시장은 지난달 하르츠 개혁 폐기를 요구하며 ‘연대 기본소득’ 도입을 요구했다. 실업자들에게 매달 416유로(약 55만 원)씩 주고 있는 실업수당 대신 국가에서 기본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이들에게 매달 1500유로(약 198만 원)에 달하는 기본소득을 주자는 아이디어였다. 하르츠 개혁은 같은 사민당 소속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2000년대 초 주도한 노동개혁의 핵심이다. 복지와 실업 급여의 조건을 까다롭게 한 하르츠 개혁은 이후 독일 장기 호황의 바탕이 됐지만 정작 사민당 몰락의 단초가 됐다는 내부 비판이 많다. 우클릭에 실망한 사민당 전통 지지층이 극좌 정당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극좌 정당 오성운동은 올해 3월 총선에서 실업자나 저소득자에게 매달 780유로(약 103만 원)의 ‘기본소득’ 지급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기본소득 공약은 특히 실업률이 높은 이탈리아 남부의 표심을 강타해 선거에서 일당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에서도 기본소득은 차기 대선의 주요 화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불을 붙이는 건 첨단 산업의 첨병 ‘실리콘밸리’다. 실리콘밸리 교육 관련 벤처 사업가 출신인 앤드루 양은 이달 초 모든 18∼64세에게 매년 1만2000달러(약 1296만 원)의 현금을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2020년 민주당 후보로 대선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는 “자동화로 인해 제조업, 소매점, 서비스업 등 각 분야에서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현실적 방법이 정부가 현금을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도 지난해 “모든 사람이 새로운 것에 적응할 쿠션을 주기 위해 보편적인 기본소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고,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도 기본소득 찬성론자다.

좌파뿐 아니라 일부 우파 진영에서도 기본소득이 정착될 경우 비효율적인 여러 다른 복지 혜택을 줄일 수 있어 오히려 국가 재정에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빈곤층이 늘어나면 건강 악화에 따른 보건·복지 비용과 폭력이나 약물 중독에 따른 사회 불안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막는 게 오히려 재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핀란드에서 현재 이 사업을 운영 중인 정부도 중도 우파 정당이다. 기본소득을 제공할 경우 실업 급여를 받으려고 저임금이나 임시직을 꺼리는 부작용을 없애고 창업과 구직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됐다.

문제는 결국 비용이다. 지난달 총선 이후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언제 기본소득이 지급되느냐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루이지 디마이오 오성운동 대표는 “재정 문제 때문에 도입에 최소 2년은 걸린다”며 난감해하고 있다.

앤드루 양은 재정 충당을 위해 이른바 ‘로봇세’와 부가가치세 도입을 들고 나왔다. 자동화로부터 이익을 얻는 회사들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자는 논리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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