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동아]꼬마 환자들 이름 일일이 기억… 代이어 찾는 정겨운 동네병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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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환자중심병원 <3> 연세이문소아과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4월 초.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서울 동대문구의 좁은 찻길에 들어섰다. 거리에는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둑한 골목에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낡은 건물들 사이로 새로 지은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환하게 불빛을 밝히고 있는 건물 2층엔 환자중심병원으로 선정된 연세이문소아과가 있었다.

365일 동네 아이들을 진료하는 소아과 의원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에 위치한 연세이문소아과는 이진태 원장이 동네 아이들을 진료하는 작은 의원이다. 이 원장은 이문초등학교 출신으로 이문동에서 50년 이상 살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자신이 자랐던 동네에 병원을 개원한 후 16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처음 5년은 간호사 서너 명과 휴일도 없이 아이들을 돌봤다. 오전 8시 반에 문을 열어 평일은 오후 10시까지, 주말과 공휴일, 명절에도 오후 7시까지 진료했다. 이 원장은 진료를 시작하고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의원 오픈 시간 외에도 이 원장의 휴대폰은 어린 환자들을 위해 24시간 켜져 있다. 열이 나는 아이들은 새벽 시간에도 안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낮 시간에 진료를 보는 의사 한 명, 간호조무사 4명과 함께 환아들을 돌보고 있다. 이 원장은 주로 오후 7시 이후 그리고 주말, 공휴일에 진료를 본다.

연세이문소아과는 언제든 갈 수 있는 의원으로 소문이 나서 간간이 소아과 응급이 아닌 환아들이 늦은 밤에도 이 원장을 찾곤 한다. 어떤 환아는 새벽에 치아가 아파 잠을 잘 수가 없다며 이 원장을 호출한 경우도 있다. 이런 환자는 우선 급한 통증을 가라앉혀 주고 날이 밝으면 치과 병원에 갈 수 있게 도와준다. 이 원장은 “아픈 아이들은 유독 밤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며 밤 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명절 때는 환자가 부쩍 많아진다. 휴일이 긴 탓에 응급실 말고는 마땅히 문을 연 곳도 없고 누구라도 급할 때 찾을 수 있는 이 원장이 의원에 항상 있기 때문이다.

마침 5일 기자가 취재를 하기 위해 의원을 찾은 날은 원래 있던 건물에서 새로 지은 옆 건물로 이전한 지 2주 정도 된 때였다. 전에 있던 의원이 2층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 유모차를 끌고 온 부모가 힘들게 계단을 올라오는 것이 이 원장은 항상 마음에 걸렸다. 병원을 이전한 이유 중에 하나가 새로운 건물엔 엘리베이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3시간마다 열관리 시스템
연세이문소아과는 아이들의 열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3시간 간격으로 체크지에 기록된 아이의 체온변화를 보고 약을 조절한다.
연세이문소아과는 아이들의 열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3시간 간격으로 체크지에 기록된 아이의 체온변화를 보고 약을 조절한다.
연세이문소아과는 아이들의 열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3시간 간격으로 감기약과 해열제를 번갈아 처방하며 보호자들에게 24시간 열 체크를 권유한다. 체크지에 기록된 아이의 체온 변화를 보고 약을 조절한다. 이런 열관리 시스템이 모든 부모들에게 호응을 얻은 건 아니다. 부모들이 밤에 잠도 못 자고 3시간마다 아이 체온을 확인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원장은 아이들의 치료가 우선이라며 보호자를 설득한다.

이 원장이 이런 열관리 시스템을 도입한 데에는 소아과 의사로서 오랜 시간 아이들을 진료한 경험과 다수의 논문이 바탕이 됐다. 이 원장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함께하면서 기침, 콧물의 종류까지도 세심하게 관찰하고 치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의원을 찾는 부모들에게 모유수유도 적극 권장한다. 부모들과 가끔 의견이 부딪치는 경우도 있지만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소신을 가지고 설득한다.

연세이문소아과는 아이들의 의원인 만큼 예방접종을 위한 약들은 수시로 관리한다. 아이가 접종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부모들에게 전화로 알려주기도 한다.

원장을 ‘아빠’라고 부르는 어린 환자
아이들을 살펴보고 있는 이진태 원장.
아이들을 살펴보고 있는 이진태 원장.
기자가 취재를 갔던 늦은 저녁 시간에도 병원 대기실은 만원이었다. 취재는 두 시간 넘게 이뤄졌다.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의원에 비교적 오랜 시간 머물렀던 이유는 어린 환자들 때문이었다. 기자가 진료실에서 이 원장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이 원장의 시선은 대기실의 환자들과 컴퓨터의 진료 기록들을 확인하느라 바빴다. 인터뷰 중간에도 환자를 먼저 봐야겠다며 기자를 잠시 진료실 밖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접수 데스크의 의료진은 의원에 온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한 명씩 불러주며 진료 준비를 도왔다. 한 의료진은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와 안부를 묻고 혼자 병원에 온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에게는 우산도 없이 왔냐며 잔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상급병원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무엇보다 이 원장의 환자 사랑이 각별하다. 이 원장이 이렇게 아이들을 진료하는 데 열심인 것은 원장 자신이 6명의 아이 아빠이기 때문이다. 이 원장의 막내는 올해 다섯살이다. 아이가 아팠을 때 부모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취재 동안 만난 어느 아기 환자는 이 원장을 아빠라고 불러 웃음을 자아냈다. 병원을 지킨 시간만큼 환자들과의 에피소드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한밤중에 열이 펄펄 나는 아이와 함께 응급차를 탄 일, 어깨뼈가 빠졌다는 아이 집에 가서 뼈를 맞춰주고 온 일, 엉덩이 고름을 빼달라며 찾아온 아기 환자까지. 구급차를 타고 함께 달렸던 어린 환자는 이제 중학생이 됐고 병원을 다녔던 아이는 어느덧 부모가 돼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온다.

이 원장은 “동네 아이들이 건강하게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 뿌듯하다”며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정위원 한마디
“이웃사촌 같은 동네의원”


연세이문소아과는 취재 전 선정위원들 사이에서 열관리 진료 방식에 대한 찬반 의견이 있었다. 진료나 처치 등에서 일부 보호자들의 불만이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하지만 365일 동네 아이들의 진료에 힘쓰고 있고 응급 시 찾아갈 수 있는 병원이라는 것에는 대부분의 위원들이 좋은 점수를 줬다.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실제 개원을 하면 환자와 보호자를 설득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신을 가지고 환자를 진료하는 원장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진우 대한한의사협회 대변인도 “동네병원은 환자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는 데에도 그 역할이 있다”며 “환아의 상태를 체크하고 처방에 반영하는 것은 훌륭하다”고 말했다.

연세이문소아과는 동네의원(1차 의료기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평이다. 구홍모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환자안전본부장은 “오랫동안 동네 주민을 이웃사촌으로 대하고 있는 동네의원”이라며 “화려한 건물과 최신 의료시설을 앞세운 병원이 많아지고 있는 요즘 연세이문소아과는 환자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의료기관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대변인도 “환자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해주고 환자가 대를 이어 병원에 올 수 있는 동네병원이 정겹기까지 하다”고 호평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헬스동아#건강#의료#환자중심병원#연세이문소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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