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침투’해 여론조작-불법홍보 ‘언더마케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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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 일당’ 아이디 활동 살펴보니


지난해 8월 네이버의 한 여성 전용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진 여러 장이 올라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함께 있는 모습이다. 두 사람을 긍정적으로 표현한 글도 이어졌다. 게시자의 아이디(ID)는 ‘K○○’. 다음 날 같은 커뮤니티에 같은 아이디로 다른 글이 올라왔다. “김경수 의원이 좋은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는 내용이었다.

커뮤니티는 회원이 300만 명이 넘는다. 이곳에서 ‘K○○’는 자신을 ‘독박 육아’를 하는 여성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다른 웹사이트에서는 “아이 아빠”라고 밝혔다. 추적 결과 그는 2016년 11월 ‘드루킹’ 김동원 씨(49·구속 기소)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드루킹님 과거 글에 답이 다 있다”는 글을 남겼다. 커뮤니티 회원들은 ‘K○○’를 드루킹 일당으로 의심하고 있다. 김 의원 팬카페 홍보를 위해 커뮤니티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K○○’는 커뮤니티에서 자취를 감췄다.

다음의 유명 친문(친문재인) 카페인 ‘문팬’에서는 ‘파○○’라는 아이디의 회원이 눈에 띈다. 지난해 3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파○○’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일 때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이후 드루킹이 만든 문 대통령 지지 모임 ‘경제도 사람이 먼저다(경인선)’의 글을 수차례 옮겨왔다.

언더마케팅 업계에서는 이런 활동을 ‘침투’라고 부른다. 언더마케팅은 온라인에서 드러나지 않게 입소문만으로 홍보하는 기법을 말한다. 침투는 일반 사용자로 가장해 온라인 카페에 가입한 뒤 눈치채지 않게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홍보하는 수법이다. 23일 본보가 드루킹 일당과 관련된 여러 아이디의 활동 기록을 살펴본 결과 적극적으로 언더마케팅 활동을 펼친 것으로 파악됐다.

대표적인 언더마케팅 기법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한 조작이다. 김 씨는 휴대전화 170여 대를 ‘깡통 스마트폰(공기계)’으로 이용해 뉴스 댓글 ‘공감’ 수를 조작했다. 공기계는 인터넷주소(IP주소)를 수시로 바꾸기 위한 장비다. 온라인 여론 조작의 필수품으로 꼽힌다.

또 블로그 ‘경인선’에는 드루킹 일당이 ‘품앗이 프로그램’을 활용한 흔적도 보인다. 품앗이 프로그램은 이름 그대로 홍보를 원하는 사용자들이 상대방의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를 홍보해주는 것이다. 자신의 아이디로 서로의 블로그나 카페에서 공감을 누르고 댓글을 달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프로그램이다. 3월 중순 경인선에 올라온 한 게시물이 60개 남짓 공감을 얻었는데 일부에서 품앗이 프로그램이 사용된 흔적이 포착됐다.

주오사카 총영사 청탁이 실패로 끝난 뒤 올 2월 드루킹 일당은 김 의원 관련 기사에 ‘김경수 오사카’라는 댓글을 반복해서 달았다. 업계에서 말하는 ‘역공격’이다. 작업을 의뢰한 고객이 약속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이들을 상대로 여론 조작을 하는 것이다. 언더마케팅 업자 A 씨는 “식당 한 곳에 대한 부정적인 후기 하나로 프랜차이즈 업체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언더마케팅은 이용자를 속이는 부정행위와 다름없다. 불법 소지도 많다. 자동화 프로그램을 이용한 홍보는 물론이고 역공격 과정에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 그래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네이버 등은 문제가 확인되면 검색 결과 노출 제한 등의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근본 해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여론조작#드루킹#포털사이트#언더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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