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 지분 한 株 없어도 정권 바뀌면 잘리는 포스코 회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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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어제 긴급 이사회를 열고 돌연 사임 의사를 밝혔다. 권 회장은 이날 이사회를 마친 뒤 “새로운 100년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며 “그 중 최고경영자(CEO)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저보다 더 열정적이고 능력 있고 젊고 박력 있는 분에게 회사의 경영을 넘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임기 2년을 남겨둔 권 회장이 직접 밝힌 사임의 이유다.

하지만 그는 최근까지도 경영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지난달 31일 창립 50주년 기념 간담회에서 CEO 교체설에 대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닌 것 같고 정도에 따라서 경영해 나가는 게 최선책이라고 생각한다. 더 애정을 갖고 많이 도와 달라”며 사실상 사퇴 의사가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권 회장은 실적도 좋은 편이다. 4년간의 구조조정을 통해 지난해 매출 60조 원에 영업이익도 6년 만에 최대인 4조6000억 원을 달성했다. 이 때문에 역대 정권교체 이후 포스코 회장들이 모두 물러난 전례가 문재인 정부에서도 반복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고(故) 박태준 회장이 김영삼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물러난 것을 비롯해 포스코의 역대 회장들은 정권이 바뀌면 예외 없이 퇴진 압력을 받다가 7명 모두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했다. 권 회장이 외압을 받아 사의 표명을 했는지 아직 드러난 정황은 없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4차례의 대통령 해외 순방에서 경제단체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포스코는 배제됐다. 일부 시민단체는 지난해 12월 최순실 씨가 박근혜 정부에서 포스코 인사에 영향을 미친 의혹을 밝혀 달라며 권 회장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황창규 KT 회장이 17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현 정권의 직접적인 사퇴 요구가 없었어도 권 회장 스스로 압박을 느꼈을 수도 있다. 외국인의 지분이 57%에 이르는 포스코는 정부가 소유한 지분은 단 한 주도 없는 민간회사다. 그런 기업의 회장 자리를 역대 정부는 ‘정권의 전리품’쯤으로 여기며 회장을 교체하고 포스코의 경영을 흔들어왔다. 적폐청산을 내건 문재인 정부도 과거 정권이 해왔던 적폐를 답습하는 것인가.
#권오준 회장#포스코#적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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