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한줄]베를린 장벽에서 남북정상회담 소식을 듣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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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해나 거짓은 진실에 기생한다. 모든 오해는 부분적 진실 위에 앉아 있다. 그러나 절반의 진실은 온전한 거짓이다.”―리하르트 슈뢰더, 독일통일에 관하여 잘못 알고 있는 것들(법무부·2014년) 》

독일 베를린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통일한지 28년이 지났지만 동서로 나뉘었던 흔적은 도처에 깔려 있었다. 지금도 옛 동독 지역에 있는 신호등 캐릭터 ‘암펠만’은 베를린의 대표 기념품이 됐다. 2700여 개의 콘크리트 석관으로 채워진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공원은 수도 한복판에서 독일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누르고 있었다. 장벽을 넘다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로 ‘죽음의 띠’라고 불리는 지역 등에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독일에 있을 때 한국에서 예상치 못한 소식이 들렸다. 11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반가움도 잠시, 습관적인 의심이 바로 튀어나왔다.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우리는 하나”라고 외친 북한 응원단과 남한 관중의 합창을 보면서도 같은 마음이었다. 동독보다 기만적이고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는 북한을 통일의 진심어린 파트너로 받아들이기엔 불신의 생채기가 쉽게 아물지 않는 듯하다.

이 책은 우리보다 앞서 통일을 겪은 동독 출신 저자가 통일에 관한 불신과 오해를 나열해 보여준다. 동독 출신에 대한 차별과 불공정해보이는 사법처리, 통일을 실패로 치부한 언론 등 ‘절반의 진실’에 근거한 주장을 일일이 반박한다. 저자는 독일을 통일로 이끈 첫걸음은 빌리 브란트 총리의 신동방정책이었다고 말한다. 서로 대화하고 협상하며, 합의할 수 있는 건 협약을 통해 규정하고, 합의할 수 없는 건 보류하는 것이다. 이런 정책이 베를린 장벽을 일순 무너뜨렸다.

베를린에서 “이히 콤메 아우스 쥐트코레아(남한에서 왔다)”라고 하면 다들 반가워했다. ‘꼭 가보고 싶은 나라다’ 등의 반응을 통해 높아진 대한민국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쥐트(남쪽)’란 수식어는 움라우트 발음처럼 어딘가 불편했다. 언젠가 쥐트를 뺄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반의 진실’에 대한 면역력과 분별력을 키우는 것이 외면보다 나을 것이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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