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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표정훈의 호모부커스]<97> 작가의 창작실

표정훈 출판평론가
입력 2018-02-12 03:00업데이트 2018-02-12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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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출판평론가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은 무명 시절 영국 에든버러의 카페 니컬슨과 엘리펀트 하우스에서 작품을 썼다. 포르투갈의 포르투에 있는 카페 마제스틱도 롤링의 집필 장소로 유명하다. “카페 드 플로르로 가는 길은 자유에 이르는 길이었다. 그곳은 우리 집이었다.” 파리의 카페 드 플로르의 개근 고객이었던 철학자이자 소설가 장폴 사르트르의 말이다. 그는 계약결혼 관계였던 시몬 드 보부아르와 함께 2층 구석 자리를 종일 차지하고 글을 쓰거나 사람들과 만나 토론했다.

유럽에 카페가 있었다면 우리나라에는 다방이 있었다. 부산 피란 시절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고 김동리 소설 ‘밀다원 시대’의 배경인 밀다원 다방은 다방 그 이상의 장소였다. ‘광복동 문총 사무실 2층의 이 다방은 갈 곳 없는 문인들의 안식처였고 찾기 힘든 동료들의 연락처였으며, 일할 곳 없는 작가들의 사무실이었고 심심찮게 시화전도 열리는 전시장이기도 했다.’(김병익, ‘한국문단사’)

카페와 달리 사생활이 보장되는 내밀한 공간, 침실에서 일한 작가로 마르셀 프루스트가 있다. 그는 소음을 극도로 싫어한 나머지 침실 벽에 코르크를 붙이고 칩거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했다. 파리의 카르나발레 박물관에 그 침실이 보존돼 있다. 침대에서 집필할 때가 많았던 그는 한 출판사에서 이런 출간 거절 편지를 받았다. “주인공이 잠들기 전 침대에서 뒤척이는 모습을 묘사하는 데 30페이지나 필요한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군요.”

개방된 카페와 내밀한 침실의 중간이 집필실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에서 집필실을 마련하는 작가들이 많아진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지만 비용 마련이 쉽지 않다. ‘전업 작가로서 프로 의식을 갖는 데도 집필실이 필요하다. 집에서 창작하다 보면 고등실업자인 것 같은 자괴감에 빠지기 때문에라도 집필실이 필요하다는 것이 젊은 작가들의 공통적인 얘기.’(동아일보 1997년 2월 25일자)

원주 토지문화관, 서울 연희문학창작촌, 마포중앙도서관, 청송 객주문학관, 증평 21세기문학관, 담양 생오지문예창작촌, 하동 평사리문학관, 서울 프린스호텔, 이 밖에도 작가에게 집필실을 제공하는 곳이 적지 않다. 문예진흥기금 사업으로 ‘문학 집필 공간 운영지원사업’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학진흥기본계획에는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사업’이 있다. 작품의 산실(産室)을 위한 공적 지원이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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