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기자의 對話]♬ 평창 겨울올림픽 대∼박! 나∼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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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화 2018평창겨울음악제 공동예술감독

정명화 공동예술감독은 1일 강릉 스카이베이 경포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음악제를 끝으로 예술감독에서 물러나지만 강원도가 평창대관령음악제와 겨울음악제를 소중한 지역 자산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8평창겨울음악제는 1월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을 시작으로 2월 16일까지 춘천 원주 강릉 평창 등에서 열린다. 강릉=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정명화 공동예술감독은 1일 강릉 스카이베이 경포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음악제를 끝으로 예술감독에서 물러나지만 강원도가 평창대관령음악제와 겨울음악제를 소중한 지역 자산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8평창겨울음악제는 1월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을 시작으로 2월 16일까지 춘천 원주 강릉 평창 등에서 열린다. 강릉=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Andante religioso <느리면서 경건하게>

바람이 차다. 늘 하는 연습이지만 할 때마다 새로운 것은 왜일까. 처음 첼로를 잡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주마등처럼 지나간 시간들….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조금씩 든다. 활을 든다. 생각은 조금 있다가…. 반주처럼 밀려오는 파도 소리. 그 위를 청아하게 나는 한 대의 비올론첼로(violoncello). 마스네(Massnet)의 오페라 ‘타이스(Thais)’ 중 명상곡(Meditation)이다.

이진구 기자
이진구 기자
―최근 2018평창겨울음악제 홍보를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본의 아니게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 사임이 더 뉴스가 됐습니다.

“오∼ 그렇게 됐죠. 어쩌다가 그날 이번 겨울음악제를 끝으로 2010년부터 맡아온 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을 그만둔다는 얘길 처음 했는데…. 그게 더 뉴스가 됐나 봐요. 거의 대부분의 기사가 겨울음악제가 아니라 ‘정명화·정경화 평창음악제 예술감독 7년 만에 사임’으로 나가더라고요. 하하하.”

―평창겨울올림픽은 많이 아는데 평창겨울음악제는 잘 안 알려진 것 같습니다.

“그럴 거예요. 평창대관령음악제는 잘 아시죠? 작년까지 14회가 열렸는데, 그 대관령음악제가 사실은 평창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시작된 것이었죠. 겨울음악제는 평창겨울올림픽을 문화올림픽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시작한 것이고, 이번이 3회째입니다.”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직접 연주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네, 발레 ‘쉴 사이 없는 사랑’과 ‘평창 흥부가’ 두 작품에 참여하는데, 둘 다 세계 초연이죠. ‘쉴 사이 없는 사랑’은 남녀 무용수가 오페라 ‘타이스’ 중 명상곡에 맞춰 사랑을 표현하는 작품인데,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제가 명상곡을 연주했어요.”

―‘평창 흥부가’는 어떤 작품인지요.

“판소리 다섯마당 중 하나인 ‘흥부가’ 중 가장 유명한 ‘박 타는 대목’을 재구성한 작품인데, 명창 안숙선 소리북 조용수 피아노 김태형과 제가 함께했죠. 흥부가 박 타서 대박이 나잖아요? 평창겨울올림픽도 대박 나라는 뜻도 있고, 또 놀부의 심술을 다 용서하고 마지막에는 형제가 우애를 되찾는 흥부 이야기가 남북 간 화합이 필요한 지금 우리 상황과 잘 맞기도 하고요.” (북한이 놀부인가요?) “넹? ㅋㅋㅋㅋㅋ.”

(실제로 공연 중에 안숙선 명창이 “평창올림픽 대박 나소”라고 소리하는 대목이 있다.)

―첼로로 톱질을 표현하는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평창 흥부가는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그 제비가 보답으로 박씨를 물어오는 장면’, ‘흥부가 박을 타는 장면’, ‘흥부가 보물을 얻어 기뻐하는 장면’, ‘놀부가 흥부에게 심술궂게 했던 것을 후회하는 장면’, ‘흥부와 놀부가 함께 어우러져 평창겨울올림의 성공을 기원하는 장면’ 등 다섯 장면으로 구성됐습니다. 그중에 활기찬 톱질을 첼로의 글리산도, 반복되는 스타카토, 다양한 음계 진행 등으로 표현했죠. 피아노와 북이 분위기를 조였다 풀었다 하는 것을 눈여겨보면서 감상하면 더 재미있을 거예요.”

―자매라도 서로 음악관이 똑같을 수는 없을 텐데 어려움은 없었는지요.(그와 동생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이번 겨울음악제의 공동예술감독이다.)

“음…, 우리는 하도 어릴 적부터 함께 음악을 해서 눈만 마주치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 정도로 통하는 게 있어요. 차이야 당연히 있지요. 그게 개성이기도 하고. 하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은 차이를 조율해 가면서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 기본이에요. 그러다 보니 콰르텟 같은 앙상블에서는 서로 눈이 맞아 커플이나 부부가 많이 생기기도 해요. 하하하.”

poco a poco appassionato <조금씩 정열적으로>

조금씩 현(絃)의 떨림이 강렬해진다. 한 치를 내려갈 때마다 짙어지는 감정. 연주는 정점을 향해 간다.

―1월 3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첫날 공연이 전석 매진일 정도로 성황을 이뤘습니다.

“밤 8시에 시작했는데 거의 11시에 끝나더라고요. 후반부 시작할 때는 ‘이렇게 길어지면 언제 끝나나…’ 하고 걱정도 들었죠. 그래서 끝나고 손님들에게 ‘너무 길게 해서 미안합니다’라고 했더니 다들 ‘긴 줄도 몰랐어요’라고 하더라고요.”

―대관령음악제나, 이번 음악제나 나라에서 지원하지만 그래도 운영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나라도 쓸 곳이 많기는 하겠지만 국고 지원이 많으면 좋겠지요. 그래서 기업 후원을 요청하러 많이 다녔어요. 저희가 맡기 전에는 국고와 강원도 지원금으로만 운영했는데, 저희가 맡은 후로 기업 후원도 받을 수 있게 만들었거든요. 그 대신 힘들었죠. (예술 하시는 분들은 보통 돈 모으러 다니는 것을 꺼리지 않나요?) 하하하. 안 좋아하죠. 전에는 기업 찾아다니면서 후원 요청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이런 큰 음악제를 맡으면 해야 해요. 기업 쪽에서도 다들 도와주고는 싶어 하는데 여러 군데에서 요청이 오니까 다 해줄 수 없는 걸 가장 안타까워하더라고요.”

―특별히 첼로를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누구나 자기한테 맞는 악기가 있는 것 같아요. 첼로 하기 전에 바이올린도 배워 봤는데, 영 내 목소리 같지가 않더라고요. 전 악기는 자기 목소리를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동생(정경화)은 오히려 바이올린이 더 인간의 목소리에 가깝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바이올린에 빠진 것 같아요. 우스운 게 우리는 피아노 앞에만 가면 졸렸거든요. 그런데 명훈이는 건반 앞에서 하모니도 만들고 이리저리 쳐보면서 몇 시간이고 앉아 있더라고요.”

―우리 음악 교육이 아이들에게 ‘음악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데 많이 미흡한 것 같습니다.

“에구∼, 음악 분야만이 아니라 어느 분야든 시험이나 정답 맞히기 식인 게 제일 큰 문제죠. 뭐든지 외우라고…. 음악이 얼마나 기쁜 것인지, 시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느끼는 게 더 중요한데…. 한번은 대학 실기시험 보러 온 학생인데 현악기 지판에 음 표시하는 줄을 살짝 그어 놓은 게 보이더라고요. 귀로 찾아야 하는데 보고 찾으니…. 대학만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니까…. 시험곡 몇 개만 집중적으로 하고…. 안타깝죠.”



―그래서인지 우리는 기계처럼 정교하게 연주하는 걸 잘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왜 음악을 듣고, 음악에서 뭐가 중요한지를 잊고 있는 것이죠. 사람인 이상 연주자도 미스터치를 해요. 물론 프로 연주자가 되면 미스터치가 티 나지 않게 하는 기술이 생기기는 하지만 기술이 더 중요하다면 컴퓨터가 가장 잘하겠죠. 해외 유명 콩쿠르에서도 음악적 표현이나 느낌, 해석이 탁월하다면 미스터치가 좀 있다고 떨어뜨리지는 않아요. 그런 면에서 음악이야말로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살아남을 분야가 아닌가 생각하죠.”

―실제로 연주 중에 크게 실수한 적도 있으신지요.

“줄리아드음악원 졸업 때 졸업연주회를 했는데…, 바흐의 푸가였어요. 똑같은 부분이 반복되는 부분이 있는데 조금 하다가 뒷부분을 아예 건너뛰어 버렸죠. 깜빡하고 빼먹은 거죠. 속으로 ‘잉?’ 하고 어쨌든 내려왔는데, 그 곡을 모르는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하긴 바이올리니스트인 아이작 스턴은 협주 도중 힘차게 활을 그었다가 무대 뒤까지 활이 날아간 적도 있으니까. 재미있는 건 연주자들은 놀랐겠지만 청중은 그런 걸 너무 좋아해요. 잘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하하.”

calmato <조용히>

피아노(p)-피아니시모(pp)-피아니시시모(ppp)…. 활을 멈춘다. 공간 속에서만 울리는 소리. 음악도, 삶도 모든 것에는 끝나는 때가 있는 법. 나의 음악은 언제가 마지막일까.

―첼로를 그만두려 한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로마에서 살 때였는데 아무리 해도 더 이상 느는 것 같지 않더라고요. 더 깊어지려고 여기저기 파보는데 올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 거죠. 그래서 악기 케이스를 닫고 안 열었는데…, 3일밖에 못 갔어요. 좀이 쑤셔서 못 견디겠더라고요. 하하하. 첼로 안 하면 할 수 있는 게 많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할 것도 없고…. 그런데 그 3일이 그렇게 길더라고요.”

―선생님에게 첼로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내 마음을 소리로 표현하며 사는 게 제일 행복해요. 첼로는 그런 제 목소리죠. 지금 가지고 있는 첼로는 40년째 함께하고 있는데 이젠 아예 몸과 생각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아요.”

―앞으로 특별히 계획하신 일이 있는지요.

“이젠 나이도 들고 해서…, 한번은 가족들에게 은퇴 얘기를 했어요. 제 나이대까지 연주하는 사람이, 특히 여자 연주자는 드물죠. 그랬더니 ‘무슨 소리냐’며 은퇴하더라도 그 전에 마지막으로 원산에서 정트리오 공연은 한 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어머니 고향이 북한 원산인데 그곳에서 경화, 명훈이와 함께 공연을 하자는 것이죠. 이번 평창겨울음악제도 남북한 화합의 의미가 있으니까 할 수만 있다면 원산에서 정트리오 공연을 추진해 보고 싶은 마음이죠.”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201 8평창겨울음악제#정명화 2018평창겨울음악제 공동예술감독#평창겨울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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