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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김정은 “평창 참가”… 대북협상 과정서 韓美균열 없도록

입력 2018-01-02 00:00업데이트 2018-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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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이 어제 신년사에서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를 내비치면서 남북대화를 제의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에 군사적 긴장 완화 등 대화의 여건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미국 본토 전역이 핵 타격 사정권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위협하면서 핵탄두·탄도로켓의 대량생산과 실전배치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했다. 한쪽으로는 남측을 향해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의 조건이 이뤄지면 올림픽과 대화라는 선물을 줄 수 있다고 비둘기를 날리면서, 다른 쪽으로는 핵 무력을 강화하겠다는 주먹을 내보이는 양동(陽動) 작전을 편 것이다.

김정은은 2013년 이래 해마다 신년사에서 구체적 목표를 제시한 뒤 달성을 독려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집권체제를 강화시켜 왔다. 이번 신년사는 평창 올림픽 성공과 남북대화 개최를 강력히 희망하는 남쪽에 평화 공세를 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박 공조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책략으로 평가된다.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상 국제 공조를 흔들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속셈이다.

물론 그동안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한국 정부의 초청에 무응답으로 일관해 온 김정은이 “평창 올림픽은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라며 대표단 파견 의사를 밝힌 것은 환영할 일이다. IOC와 한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응해 북한의 올림픽 참가라는 열매를 맺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스포츠를 체제 유지와 대결의 도구로 악용했던 북한의 참가를 끌어내고 그런 과정에서 북한을 국제사회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발판이 마련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김정은이 추가 도발 중단을 선언하고, 올림픽과 무관한 정치적 요구 조건들을 철회해야 한다.

그러나 김정은은 ‘평창 참가’라는 당근 제시 밑에 깔린 자신의 의도를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김정은은 “남측에서 보수정권이 무너지고 집권세력이 바뀌었으나 달라진 게 없다”고 비난했다. 그는 ‘미국과 그 추종 세력들의 제재 봉쇄 책동’을 세 차례나 언급하면서 “남측은 외세와의 모든 핵전쟁 연습을 그만두고 미국의 핵장비들과 무력을 끌어들이는 일체의 행위를 걷어치우라”며 남측이 국제적 압박 대열에서 이탈하라고 촉구했다.

북한은 앞으로 평창 대표단 파견을 위한 대화에서 한미 연합훈련 취소 등 정치적 요구를 결부시키려 들 것이다. 김정은이 “지금처럼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불안정한 정세가 지속되는 속에서는 북과 남이 예정된 행사들을 성과적으로 보장할 수 없다”고 한 것은 북의 올림픽 참가 여부를 협상 지렛대로 쓰겠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남남(南南) 갈등은 물론이고, 한미 공조에 미묘한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평창 참가를 미끼로 한국이 미국에 북의 숙원사항 해결을 대신 요구토록 함으로써 한미동맹을 이간질하려는 효과도 노렸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력을 동원한 핵시설 제거 위협이 높아지고 국제사회의 제재 공조 체제가 어렵사리 틀을 잡아가는 형국에서 김정은이 압박 풍선에 펑크를 낼 약한 고리로 문재인 정부를 타깃으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평창 대표단 파견 제의를 철저히 올림픽 차원에서 접근해 성사시키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한미 공조 및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균열이 나지 않도록 정교하고 신중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운전석’에 앉으려 했지만 북한의 무시전략으로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본격적으로 남북협상에 나서게 된 정부의 외교안보 역량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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