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과 부인 조제핀이 자주 찾아 사랑을 나누었던 프랑스 파리 근교 퐁텐블로성 바로 옆 오스나 경매 건물. 경매를 진행하던 사회자가 164번을 외치자 200여 명의 청중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날 경매에 참가한 나폴레옹 물품 전문 수집가인 큰손 피에르 장 샬렁숑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역력했다.
164번은 나폴레옹이 1804년 황제 대관식 때 쓰기 위해 만든 왕관에 들어갔던 금 월계수 잎사귀 중 하나다. 당시 나폴레옹은 왕관이 너무 무겁다며 50개 잎사귀 중 6개의 금 잎사귀를 빼냈고, 이것을 왕관을 만든 금 세공사 마르탱 기욤 비앙네에게 선물로 줬다. 나폴레옹은 나머지 44개의 금 잎사귀로 만든 왕관을 쓰고 대관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1817년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에 유배돼 있던 시절 당시 프랑스 왕은 나폴레옹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왕관을 녹여서 없애버렸다. 남은 6개의 잎사귀가 나폴레옹 황제 왕관의 상징이 됐다. 경매회사 오스나는 비앙네의 자손들에게 직접 금 잎사귀 한 개를 받아 경매에 내놓았다. 한 개는 32년 전 경매를 거쳐 퐁텐블로성 안에 전시되고 있고 나머지 4개의 행방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10만 유로로 시작된 금액은 30초 만에 30만 유로로 올라갔다. 샬렁숑과 전화로 참여한, 신분이 드러나지 않은 인물 사이에 마지막 경쟁이 벌어졌다. 고민의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면서 긴장감은 오히려 높아졌다. 48만 유로를 힘겹게 부른 샬렁숑은 전화 참여자가 50만 유로를 부르자 결국 포기했다. 사회자가 “낙찰”을 외치며 작은 망치로 탁자를 두드리면서 주인은 결정됐다. 경매 수수료 25%를 포함한 실제 낙찰액은 62만5000유로(약 8억1250만 원)였다. 경매 관련자는 “오늘 나뭇잎을 낙찰받은 이는 중국인 수집가”라고 귀띔했다.
이 잎사귀의 무게는 불과 10g. 금값으로만 치면 500달러에 불과하지만 역사적 가치가 더해지면서 무려 1474배의 값어치로 평가받은 것이다. 샬렁숑은 이날 경매에서 이 금 잎사귀를 놓쳤지만 나폴레옹이 썼던 접시와 찻잔 수저 등 여러 개의 물품을 개당 수천만 원이 넘는 금액에 낙찰받았다. 그는 기자에게 “금 잎사귀를 놓쳐 아쉽지만 그만큼 나폴레옹의 물건이 인기가 많다는 게 또 증명됐다”며 “내가 수집한 나폴레옹 전시품으로 한국에서 전시회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주 경매에 나온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예수 초상화 ‘살바토르 문디’가 5000억 원에 가까운 고액에 낙찰되면서 귀중품 경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이날 경매는 전화, 인터넷, 현장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전화나 인터넷으로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분이 드러나기를 꺼린다. 기자 옆에 앉은 한 중년 여성은 휴대전화로 누군가에게 “12만5000유로 전화로 신청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경매는 유로로 진행됐지만 화면에는 달러와 파운드, 루블화 등 6개의 다른 화폐로 동시에 가격을 알려주고 있었다. 한 개에 수천만 원짜리 물건들은 이렇게 1분에 1개꼴로 빠르게 새 주인을 만났다.
경매는 감정사들이 책정한 평가액부터 시작된다. 가끔 아무도 참여하지 않은 물건도 있었지만 대부분 평가액과 비슷하게 낙찰됐다. 그러나 때로는 평가액의 10배가 넘는 금액에 낙찰되기도 한다. 감정사인 마리 드 라 슈바흐디에흐는 “가격을 평가하는 참고 기준이 없기 때문에 평가가 쉽지 않다. 우리는 평가액을 줄 뿐 모든 가격은 경매장에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그가 감정을 했던 나폴레옹의 부인 조제핀이 쓰던 보석함은 4만∼5만 유로로 평가액을 냈지만 그보다 3배가량 높은 15만6250유로(약 2억310만 원)에 낙찰됐다.
나폴레옹 왕관을 만든 금 세공사 비앙네가 만든 유일한 남자 보석함인 165번 역시 5만8150유로(약 7560만 원)의 비싼 가격에 낙찰됐는데, 그 주인공은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사회자가 “프랑스에 남게 돼 다행”이라고 말하자 청중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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